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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1만1,000명 투입해 1,000명 사망 부상·실종자 더하면 4,000명 육박 추산 BBC "대규모 병력 손실로 큰 비용 발생"
영국 공영 BBC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 중 약 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상자와 실종자까지 합친 병력 손실 규모는 전체 파병 병력의 40%에 달한다. 러시아의 물량 중심 전략과 북한군의 후퇴 없는 전술이 맞물려 단기간에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BBC "북한군,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병력 손실"
23일(현지시각) BBC는 복수의 서방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에 파병된 북한군 1만1,000여명 중 이달 중순까지 숨진 인원이 약 1,000명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사망자·부상자·실종자 등을 모두 합친 병력 손실 규모는 4,000명으로 북한군 전체 파병 병력의 4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28일경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된 것이 확인된 이후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아 집계된 결과다.
BBC는 당국자들이 전한 집계치가 사실이라면 북한군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병력 손실을 본 것이라고 짚었다. 병력 충원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단기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며 북한군의 전투력을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BBC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을 앞두고 러시아 영토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파병을 했지만, 대규모 병력 손실로 인해 그에게 큰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NYT)도 우크라이나군 최고 사령관인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장군을 인용해 북한군의 손실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배치된 병력의 거의 절반이 사상자가 됐다고 추정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9일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서 북한군 사상자가 4,000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군, '후퇴 없는 작전'으로 막대한 사상자 발생
북한군뿐 아니라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병력 손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서방 주요 정보기관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6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중 사망자는 최대 1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전사자 5만7,000명을 포함해 30만7,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의 사망자 수가 우크라이나군의 약 2배에 달하는 데는 공격 작전의 불리함, 군 준비 상태의 차이, 서방의 지원, 전략적 실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러시아의 물량 중심 전략과 훈련 부족이 사상자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량 중심 전략은 대규모 병력과 자원을 집중 투입해 상대를 압도하는 전술로, 병력이나 장비는 풍부하나 고도의 기술이나 정밀 무기의 사용이 제한적일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 전략으로 인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정밀 유도 무기와 서방의 첩보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방어했지만, 러시아군은 훈련이 부족한 징집병과 장비로 대규모 공세를 펼치면서 효과적인 전투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대규모 사상자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북한은 러시아 전선에 군대를 파병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돼 러시아의 물량 중심 전략에서 돌격대 역할을 맡고 있다. 전술이나 전력의 수준을 고려할 때 북한군의 병력 손실이 매우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NYT는 이들이 장갑차 없이 전진하며 후퇴 없는 작전을 강행하기 때문에 공격 중 막대한 전력 손실을 입어도 후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북한군 병사들이 사실상 전장에서 '인간 지뢰 탐지기'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 탈영·탈북 우려해 추가 파병 꺼려
북한이 막대한 병력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러시아 전선에 군대를 파병한 배경에는 금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NYT에 따르면 북한군의 파병은 러시아의 요청이 아닌 김 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북한이 러시아에 2만 명의 병력을 투입할 경우 김 위원장은 연간 5억7,200만 달러(약 7,890억원)의 수입을 추가로 축적할 수 있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그동안 외국 용병에게 약속한 금전적 보상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추산한 수치다.
보고서는 "북한군의 전체 병력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은 최대 10만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 있다"며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그렇게 많은 인원을 파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북한 주민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음에도 유입되는 북한 노동자 수가 놀랍도록 적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팬데믹 이전에 러시아 체류 북한 노동자는 4만 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6,000여 명에 불과하다.
대규모 병력을 보낼수록 탈영이나 탈북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우려되는 점이다. 또한 10만 명의 병력을 파견하려면 북한 보안요원이 병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도주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므로 투입되는 자원과 인력을 과도하게 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은 파병 인원 대부분이 사상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귀중한 인적 자원을 고갈시킬 여유가 없다. 한국의 인구가 이미 북한의 두 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한반도에서 적대 행위가 발생하면 북한의 국경 방어 능력이 약해질 위험을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