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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국 그늘 벗어나기’ 유럽과 광범위한 협력망 구축 글로벌 불확실성 대비한 ‘보험’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일본은 전후 대외 정책 기조를 선회해 미국에 대한 절대 의존에서 벗어남으로써 지금까지의 경제 안보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미국을 여전히 우방으로 두지만,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재집권으로 인한 글로벌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일본, 미국 의존 벗고 ‘EU 협력 강화’
지난 5년간 유럽연합(EU)과의 무역도 미국보다 두 배 빠르게 성장해 왔다. 2019년 체결된 EU-일본 경제동반자협정(EU-Japan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이하 EPA)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강력한 단일 파트너에 의존하는 대신 유라시아 내에 복수의 경제 및 안보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일본에게 유럽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과 미국의 정치적 혼란에 대비하는 전략적 다양성과 분산 투자의 핵심이 됐다.

주: 대EU 무역(단위: 십억 유로, 짙은 청색), 대미 무역(단위: 십억 달러, 청색)
대미 무역 정체 및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이 원인
수십 년간 일본은 미국의 보호 아래 경제를 재건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유지해 왔지만 이제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과의 무역은 정체 상태에 있고, 중국은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미국 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가 문제다. 이에 유럽을 장기적인 위험 분산 수단으로 삼아 무역을 확대하고, 국방 기술을 공동 개발하며, 에너지 및 디지털 인프라를 공유하려 한다.
무엇보다 무역 실적이 진전을 말해 준다. 작년 EU의 일본 수출은 7.1% 증가했는데 EPA 체결 이후 34.7% 급증한 서비스 무역의 역할이 컸다. 일본의 유럽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는 2,120억 엔(약 2조원)에 달해 유럽의 3배에 이른다. 그 사이 미국의 일본 수출은 양적으로 정체를 보이며, 항공 우주 및 액화천연가스(LNG) 분야의 가격 상승으로 액수만 늘어난 상태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도 일본의 다변화를 가속화했다. 미국이 원하는 국방비 기준을 맞추지 못한 동맹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이 밝혀지며 충격을 줬다. 일본은 이미 7조 7,000억 엔(약 72조6,000억원)의 국방 예산을 승인한 바 있지만 사이버 및 미사일 방어를 우선시해 재래식 무장을 선호하는 미국과 충돌을 빚고 있기도 하다.
에너지 문제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에 알래스카산 천연가스에 대한 장기 공급 계약을 종용해 왔는데 운송비 상승과 상업적 타당성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일본의 전력 회사들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 이 거래가 미국의 전략적 신뢰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EU와 ‘에너지, 핵심 광물, 국방 기술’ 등 협력 다각화
반면 EU의 제안은 한결 깔끔해, 유럽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접근 보장, 그린 수소(green hydrogen, 신재생 발전을 이용해 CO2를 발생시키지 않고 생산되는 수소)의 공동 조달, 일본의 남유럽 재생 에너지 기술 제공에 대한 지원 등이 골자다.

주: 유럽, 일본, 한국, 아시아 국가들, 기타, 합계(좌측부터) / 수출량(단위: 세제곱미터)(짙은 청색), 수출 비중(%)(청색)
유럽과 일본 모두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핵심 광물도 중요한 현안이다. 양쪽은 2023년 나미비아, 칠레, 캐나다 광물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실사 및 투자에 합의해 중국의 수출 통제에 대비한 바 있다. 관련해 EU의 강압 금지 조치(Anti-Coercion Instrument)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제공할 수 있다.
국방 협력도 강화되고 있는데 일본은 단순 무기 구매에서 공동 개발로 방향을 바꿨다. 먼저 글로벌 전투 항공 프로그램(Global Combat Air Programme)을 통해 영국, 이탈리아와 100억 달러(약 13조6,000억원)를 공동 투자해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또 영국과 상호 접근 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을 맺고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도 협력 분야로, 호환 가능한 신원 확인 시스템 구축에 합의하고, 태평양 해저 케이블에 공동 투자해 대만 해협을 우회하는 통신망 구축에 나섰다.
일본의 선택은 ‘현실적 대안’
유럽과의 협력 강화는 일본 국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보수 진영은 유럽 방위 기술에 대한 접근을 반기고, 진보는 EU의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 지표) 및 데이터 정보 보호 등 규제 정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업들도 유럽을 미국 및 중국 공급망에 대한 강력한 균형추로 보고 있다. 일본 재무성이 유로 기반의 친환경 채권을 발행한 것만 봐도 일본 정부가 다각화에 얼마나 진지한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의 정책은 네 가지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유지하되 배타성은 줄여 나가고, 복수 지역으로 공급망을 다각화하며, 공동 협력을 통해 강압적 정책에 대응하면서 필요시 전략적 인프라를 나누는 것이다.
한때 금기시되던 일본의 미국에 대한 의존 탈피는 이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무역이 강압 수단이 되고 동맹이 흔들리는 시대에 일본의 전략적 다각화는 현실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원문의 저자는 실비아 메네가지(Silvia Menegazzi) 루이스 귀도 칼리(Luiss Guido Carli) 조교수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Japan’s economic security strategy looks beyond the United State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