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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국제통상법원 "트럼프 관세는 권한 남용" 항소법원, 정부 요청 수용해 관세 효력 유지 결정 글로벌 시장, 장기적 불확실성 확대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조치에 대한 무효 판결이 하루 만에 힘을 잃었다.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1심 판결 효력 정지 요청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며 상황이 뒤집힌 것이다. 한동안 관세를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승패와 무관하게 관세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트럼프 관세'의 위기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 재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발표한 상호관세의 발효를 차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재판부는 "미 헌법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과세 권한을 부여했다"면서 "이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비상권한으로도 뒤엎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의가 제기된 해당 관세 명령은 취소되고, 그 시행은 영구적으로 금지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관건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전 세계 국가의 상품에 무제한 관세를 부과하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줬는지 여부"라며 "IEEPA는 대통령에게 이런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1977년 발효된 IEEPA는 미국의 안보, 외교, 경제에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있는 경우, 대통령이 해당 문제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고질적인 무역 적자 등이 IEEPA가 규정한 '특별한 위협'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극단적 관세 정책을 펼쳤다.
다만 연방국제통상법원은 무역 적자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긴급 사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로 삼은 IEEPA 조항은 수입 규제를 위한 한시적 수단일 뿐, 관세 전쟁의 무기로 쓰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IEEPA에 의거해 전 세계 국가에 부과된 10% 기본 관세,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부과된 추가 상호관세 조치 등은 무효가 될 위기에 놓였다.
6월 9일까지는 효력 지속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즉시 항소와 함께 1심 판결의 효력 정지를 요청했다. 이후 29일 미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전날 연방국제통상법원이 무효화한 IEEPA 기반 관세 효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을 발칵 뒤집었던 연방국제통상법원의 판결이 하루 만에 무효화된 것이다.
항소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미국 정부의 효력 정지 신청에 대한 답변서를 6월 5일까지 제출해야 하며,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한 재답변서를 6월 9일까지 내야 한다고 밝혔다. 항소법원은 6월 9일까지 제출된 서류를 검토한 후 1심 판결 효력 정지 결정의 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법원이 항소 진행 중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1심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함)한다면, 항소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관세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효력 정지에 대한 판단은 항소 절차와 별개로 진행된다.
관세 정책을 둘러싼 상황이 급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국제 사회에 '후폭풍'이 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항소심 절차가 통상 수개월에서 1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최종 판결이 나올 시점에는 이미 주요 무역 협상이 마무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트럼프 정부는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 수단을 활용할 수 있고, 외교·안보 등 분야에서 타국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며 "각국이 무역 협상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유럽연합(EU)은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다음 주 예정된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술렁이는 시장
현지 증시 역시 관세를 두고 벌어지는 법정 공방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관세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다. 29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일 대비 117.03포인트(+0.28%) 오른 4만2,215.7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23.62포인트(+0.405) 상승한 5,912.17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74.93포인트(+0.39%) 오른 1만9,175.87에 장을 마감했다.
다만 월가에서는 이어지는 소송으로 인해 장기적 정책·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관세 정책이 뒤집힐 수 있을지, 뒤집힌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울리케 호프만 부르차르디는 “무역과 재정 정책 관련 소식으로 앞으로 시장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향후 12개월 기준으로 보면 미국 주식은 여전히 상승하겠지만, 단기 상승폭은 더욱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외환 시장 역시 향후 벌어질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29일 달러-원 환율은 전장 서울 외환시장 종가 대비 5.40원 내린 1,371.10원에 마감했다. 이는 이번 주 주간 거래(오전 9시~오후 3시 30분) 종가인 1,375.90원 대비 4.80원 하락한 수치다.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자, 달러 가치가 미끄러지며 원화 가치가 절상된 것이다. 같은 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의 평균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인 달러인덱스는 99.348로 전장 대비 0.565포인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