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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건조, 韓서 일주일 美선 1년 반 美선박 건조비용 아시아의 5배 수준 인력난 심화, 숙련근로자 확보도 난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해양 굴기’를 꺾기 위해 자국 조선업 부활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 조선업이 다시 활성화되려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진단이 나왔다. 조선업 부활을 위해선 신규 주문을 받아야 하지만, 미 조선업은 오랜 기간 쇠퇴해 건조 능력이 떨어져 있어서다. 미국이 1920년 자국 조선업 보호를 위해 제정한 ‘존스법’이 외려 고비용·저효율 구조 고착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탓이다.
트럼프, 미 조선업 부활 지원 행정명령 서명
28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은 조선 분야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조선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미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 규정을 마련하고 특정 상업용 선박에 대해서는 미국 내 건조를 의무화했다.
미 의회도 조선업 보조금 지원을 포함한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118대 의회 종료 직전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이었던 마이클 왈츠(Michael Waltz) 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도로 처음 발의됐던 이 법안은 119대 의회에서도 양당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다시 발의돼 사실상 이견 없는 초당적 조선 부흥 정책이라는 평가다.
법안의 핵심은 10년 안에 미국 국적의 국제 상선 250척을 새롭게 건조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안은 백악관 내 해양안보보좌관 신설, 해운 인프라 투자, 조선소 투자 세액공제, 선원 및 해운 인력 양성 지원, 미국산 선박 사용 의무화 등 조선업과 해운업 전반에 걸친 정부 개입과 지원을 제도화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조선 산업 기반이 사실상 붕괴된 미국은 이번 법안을 통해 민간 조선 역량을 적극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日, 양국 공동기금 설립 제안
미국 조선업 부활에 불을 당긴 건 중국 조선업의 급격한 성장이다. 중국은 2000년부터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10년이 채 되지 않은 2009년 한국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랐다. USTR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5% 미만이었던 중국의 조선 시장 점유율은 2023년 50%까지 높아졌고, 해상컨테이너(95%)·복합운송용 섀시(86%)·항만크레인(70%) 등에서도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사실상 조선 업계의 패권을 잡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이 칼을 빼 든 것이다.
특히 조선업은 해군력 등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안보 문제로 수렴하는 패권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선 중국에 버금가는 조선업 경쟁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 국적 선박이 국제 해운에 투입된 수는 80척에 불과한 반면, 중국은 5,500척에 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격차가 국가 안보는 물론, 경제적 자립성에도 심각한 위험 요인이라고 보고 조선 산업의 ‘전면적 재건’을 명문화했다.
미국의 조선업 재건 움직임에 일본 정부도 지원하고 나섰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최근 미국 측에 양국 공동기금(펀드) 설립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안에는 공동기금 외에도 미국 내 선박 수리 시설 확충,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세대 암모니아 연료 선박 및 쇄빙선 공동 개발 등이 들어 있다.
이 같은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합하는 동시에,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한때 조선 강국으로 불렸지만 현재 세계 선박 건조 점유율은 0.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미국은 일본의 첨단 조선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의 기술로 미국 조선업을 재건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과도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비용·저효율·인력난, 삼중고에 빠진 美 조선업
그러나 미국 내 조선업 부활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먼저 조선업을 자력으로 재건하기에는 이미 인프라가 심각하게 낙후됐다. 1980년 미국 조선업을 보호했던 ‘건조보조금’이 폐지된 이후 조선업 연구개발(R&D)은 물론 인력까지 사실상 전멸했다. 미국 교통부(USDOT)에 따르면, 한때 414개에 달했던 미국 조선소는 현재 21개로 줄어들었고, 연간 선박 생산량도 5척 내외에 불과하다. 자금을 투자해 조선업을 재건하려 해도 기반조차 없는 불모지가 된 셈이다.
많은 조선 업체가 인력난에 시달리는 것도 걸림돌이다. 미 해군 연구·개발·획득 담당 차관보 대행 브렛 사이들(Brett Seidle)은 지난 3월 의회 청문회에서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조선소 직원들이 첫해에 많은 퇴사를 겪는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 필리조선소도 내년에 견습직원을 올해의 두 배인 240명으로 늘리는 등 인력난 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조선업 경쟁이 치열해 미국이 끼어들 틈도 거의 없다는 점도 비관론에 무게를 더한다. 현재 미국을 오가는 화물 운송 선박 대부분은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건조된다. 특히 중국의 선박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선박 중개업체 BRS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중국 조선소는 전 세계 인도량의 절반에 달하는 6,765척을 인도한 반면 미국은 37척에 불과했다. 가격 경쟁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1척당 컨테이너선 가격은 3억3,000만 달러(약 4,560억원)로, 아시아에서 건조되는 선박 가격 7,000만 달러(약 967억원)의 5배에 이른다.
군사력으로도 미국은 열세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은 약 234척의 해군 함정을 보유했다. 미국은 219척을 보유 중으로 미·중 해상 전력 격차가 크게 좁혀진 상태다. CSIS는 “중국 해군 군함은 오는 2030년까지 425척으로 늘어나 미국(260척 예상)을 크게 앞지르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 조선소보다 훨씬 빠르게 선박을 교체하고, 수리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