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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당 근로 ‘48.5시간’ 유럽 대비 ‘강력한 비용 우위’ 원인 EU, 강력 대응 “망설여”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말로는 글로벌 노동 기준을 지킨다고 강조하지만 중국과 유럽의 노동 문화에는 좁혀지지 않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이 외치는 규정 준수(compliance) 뒤에는 노동 시간의 차이만큼 깊은 경제적, 문화적 원인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근로자, 주당 ‘48.5시간’ 일해
올 1분기 중국 노동자들의 평균 근로 시간은 48.5시간으로 유럽연합(EU) 평균인 36.1시간보다 12시간 이상 길다. 팬데믹 이후 격차가 거의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다. EU가 규제 완화와 집행 연기를 통해 무역 상대방의 노동 기준 준수 부담을 가볍게 하는 사이, 중국은 잉여 노동력과 이들이 느끼는 경제적 압박을 이용해 장시간 노동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주: 중국(짙은 청색), EU 회원국(청색)
지난 5년간 EU 회원국들은 주당 평균 36시간 노동 관행을 한결같이 준수해 왔지만 중국은 주당 50시간에 이르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이는 산업적으로 강력한 비용 우위를 의미한다. 중국의 평균 노동 시간이 EU보다 1/3 더 긴 것은 중국 수출업체들이 임금을 더 이상 깎지 않고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격차가 문제시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패턴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 수출업체들은 EU 기준인 주당 48시간을 준수하고 있다고 확언하고 있고 숫자상으로는 거짓말이 아니다. 48시간은 EU 근로 시간 지침(Working Time Directive)이 규정한 법적 최대 근로 시간이 맞다. 문제는 유럽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은 48시간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사실상 관행은 그대로 둔 채 시늉만 하고 있을 뿐인데 유럽의 수입업체들은 복잡한 보고 의무에 지쳐 중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 주당 평균 노동 시간(짙은 청색), 청년 실업률(청색)
장시간 근로 뒤에 ‘높은 청년 실업률’
중국 기업들이 무자비한 시간 외 근무를 계속할 수 있는 원인 뒤에는 높은 청년 실업률이 있다. 올해 초 중국 청년층의 실업률은 16.5%를 기록했는데 이것도 중국 정부가 기준을 조정해 새로 내놓은 수치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기대를 낮추고 무보수 연장근무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되고 있다.
‘명상실’(meditation room)이니 금요일 ‘웰빙 휴가’(wellness breaks)니 하는 것들은 홍보에는 좋지만 중국 노동 경제의 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중국 정부의 복지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8%에 한참 못 미친다. 여기에 긴급 구제와 부채 부담으로 재정이 넉넉지 않아 노동자 보호나 복지에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기업들은 직원을 늘리거나 근무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사무실에 커피머신을 놔주고 넘어가는 식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산업 자동화도 장기간 노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시스템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고숙련 인력들의 연장 근무가 늘어나고 있다. 늘어난 고정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작동시간을 최대화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중국 법원도 악명높은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관행을 일컬음)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법정에 가져가는 노동자는 드물고, 이를 조사할 노동 감독관은 턱없이 부족하며, 기업들은 관행을 바꾸지 않는다. 법과 실제가 따로 노는 격이다.
유럽 당국도 ‘현실과 타협’
이 와중에 유럽 당국도 사안에서 잠시 눈길을 돌렸다. 지난 4월 유럽 이사회(European Council)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기업의 환경, 사회, 거버넌스 등 지속가능성 성과 보고를 의무화)의 주요 사항에 대한 적용을 최장 3년까지 연기했다. 이는 기후 정보 공개 요구(climate disclosure requirement)로 힘겨워하는 기업들의 ‘근로 기준 감사’(labor audit) 일정을 당분간 미뤄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기업들에 대한 감사 일정이 작년 대비 20%까지 줄었다.
중국 정부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도 문제다. 노동 통계를 비롯한 수백 개의 공식 데이터들이 최근 수년 사이 자취를 감췄다. 이 때문에 유럽 수입업체들은 상대 기업에 대한 위험 평가(risk assessment)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이는 다시 자본 조달 비용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빠르고 편한 길을 찾는다고 기업만 비난할 수도 없다.
물론 앞으로 중국에서 임금이 대폭 오르거나 자동화가 상당히 진행된다면 차이가 좁혀질 수도 있다. 실업률이 2017년 수준까지 떨어진다면 청년 근로자의 임금 인상으로 연결될 것이고 인건비 부담 때문에 근로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또는 EU가 엄격한 준수 기한을 재도입하고 근로 시간 기록 자동화(digital time-tracking)를 의무화해도 마찬가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멀어 보이는 가능성을 두고 양측의 암묵적인 합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낮은 인건비로 청년층을 계속 고용할 것이고 유럽은 원칙만 내세운 채 과감한 집행은 차일피일 미룰 것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값싼 단기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하오난(Hao Nan) 샤하르 연구소(Charhar Institute)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China’s beleaguered work culture bends towards Brussel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