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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사장, 간담회서 “KTX 요금 인상 추진” 발표 정부, KTX 운임 인상은 정책 기조에 반하는 것 KTX 올리면 ITX·지하철 운임도 올릴 명분 생겨

최근 KTX 운임 인상을 두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정부 간 기싸움이 드러났다. 코레일 사장이 정부와 논의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17% 인상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정부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정부는 운임 인상 가능성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었다. 물가 안정 등 정책 기조에 따라 운임을 인상할 수 없고, 코레일의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이미 국고 보조금까지 투입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코레일, KTX 운임 17% 인상 추진
3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지난달 25일 대전 코레일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철도운임 인상안에 대해 정부와 협의해야 할 사안으로, 14년간 동결된 만큼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국민경제나 소비자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와 함께 진행해야 하는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코레일이 밝힌 인상 폭은 평균 17% 정도다. 이렇게 되면 서울~부산 구간의 운임은 기존 5만9,800원에서 약 7만원 오르게 된다. 그런데 한 사장의 간담회 후 정부는 코레일 측 실무진에 연락을 취해 상황 파악에 나섰고, 실무진은 정부에 “사장님이 그렇게 지를 줄 몰랐다”며 어쩔 줄 몰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사장이 KTX 운임 인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 셈이다.
전기요금 등 물가 상승 및 인건비·운영비 상승 못 버텨
한 사장이 공식석상에서 KTX 운임 인상 필요성을 호소한 배경은 최저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인건비가 상승하고, 물가 상승으로 인해 다양한 운영비가 늘어났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전기요금 인상도 큰 부담요인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전기요금은 2021년 3,687억원에서 2024년 5,796억원으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올해는 6,4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KTX를 운영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이 크게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또 교통 인프라 유지와 철도 노선의 관리 등도 운영비에 추가 부담을 줬다.
재정악화도 해결해야 한다. 코레일의 누적 부채는 2024년 말 기준으로 21조원에 달하며, 감당해야 하는 이자 비용만 해도 연간 약 4,130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은 코레일의 경영에 큰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수조원에 달하는 열차 대체 비용 마련도 시급 과제다. 현재 운행중인 KTX 열차의 절반 이상이 2033~2034년 사이에 한꺼번에 퇴역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레일 운영 초기 도입 모델인 KTX-1 열차는 2004년에 도입돼 이제 교체 시점에 다다른 상태인데, 이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약 5조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원가 절감·자구노력으로 인상요인 흡수"
정부 안에서도 철도 운임 인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는 물가 관리를 위해 KTX 운임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수년간 ‘공공운임 인상 억제’를 경제정책방향에 담고 있다. 이는 2021년 이후 한국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영향이었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9~2020년 0%대에서 2021년 2.5%, 2022년 5.1%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3.6%로 감소했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2% 내외로 둔화됐지만, 이미 많이 오른 물가로 소비자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KTX 운임 인상이 소비자한테 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KTX 운임을 올리면 ITX나 전동열차 등의 운임 역시 잇따라 올릴 명분이 생긴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이미 코레일의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자산 매각이나 인력효율화 등을 주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익서비스의무(PSO) 보상을 해주고 있다. PSO는 정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코레일이 운영하는 철도의 노약자, 학생,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할인 요금과 적자 노선 유지 등에 드는 공적 비용을 보상해 주는 제도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매년 3,000억원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KTX 운임 인상은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먼저 협의를 하고, 그 이후에 진전이 있으면 국토부와 기재부가 협의를 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코레일 내부와 국회 등에서 운임 인상 요구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아직 국토부는 인상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공공요금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