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공매도 전면 금지 후 수익률 S&P500 못 미쳐 외국인 투자자 유입 통한 증시 탄력 전망 우세 시장 불확실성 확대 등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

국내 증시 역사상 최장기간 중단됐던 공매도 거래가 1년 6개월 만에 전면 재개된다. 2023년 11월 금융당국은 공매도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주가 하락을 유발한다고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지만, 기대했던 주가 부양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시장에서는 이번 공매도 재개 조치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등 증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공매도로 인한 변동성 확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금융위, 역대 최장기간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31일부터 공매도가 재개된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시행된 지 17개월 만이며, 전 종목에 대한 공매도 재개는 2020년 3월 이후 5년 만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23년 11월 주가 하락을 막아달라는 개미 투자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전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했다. 당시 금융위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되는 등 불법 공매도로 인해 시장의 신뢰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하는 투자기법으로 시장에서는 과대 평가된 주가를 조정해 시장 효율성과 안정성을 제고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주가 하락을 부추기고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행위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하락장에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증시 안정을 위해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8월 유럽 재정위기 △2020년 3월 코로나19 위기 등 세 차례에 걸쳐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한 바 있다.
특히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는 역대 최장기간 이어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주가 부양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이후 코스피는 11.35% 상승하고 코스닥지수는 7.28%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30% 급등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수익률에 한참 못 미친다.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종목들의 주가 흐름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공매도 금지 이후 주가 상승을 이끌거나 하락을 막았다고 보기 어렵다. 일례로 호텔신라는 공매도 금지 이후 주가가 오히려 40% 넘게 폭락했다.

증시 부양의 기대감과 변동성 확대 우려가 공존
시장에서는 이번 공매도 재개 조치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등 증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는 주로 위험 분산(헤지) 목적으로 공매도를 활용해 기업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기능이 있다. 또한 거래량 증가로 유동성이 확대된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유독 부진했던 한국 증시가 공매도 재개를 기점으로 상승세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며 "다만 일부 업종의 변동성 심화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사례에서도 공매도 재개가 특정 업종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했다. 2021년 5월 공매도가 부분적으로 허용됐을 때는 제약·바이오 업종은 급락세를 보였다. 당시 공매도 재개 첫날 시가총액 상위 주인 셀트리온헬스케어(-5.97%)를 비롯해 셀트리온제약(-5.04%), 알테오젠(-4.34%)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지난해 부진했던 이차전지 업종 역시 공매도의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밸류에이션이 높지만, 이익 전망은 양호하지 않은 로봇이나 화학 등 업종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최근 외국인의 주식 차입이 급증하면서 시장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5일 기준 외국인의 국내 주식 차입 수량은 총 3억8,714만409주로 전월(1억58만2,176주)과 비교해 약 4배로 증가했다. 이달 전체 차입 수량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61.9%)도 전월(37.3%)보다 크게 늘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다음 주 재개될 공매도 거래가 외국인을 중심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외국인의 차입 수량이 급증한 반면, 대여한 주식 비중은 지난달과 큰 차이가 없어 상당 물량이 공매도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앞선 세 차례 공매도에선 재개 직전에 주가 상승
일각에서는 공매도 재개되기 전까지 단기간 주가가 오름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존에 시행된 3건의 공매도 조치를 살펴보면, 코스피와 코스닥을 구분할 것 없이 공매도 한 달 전부터 재개 전일까지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공매도가 재개된 이후로는 한 달간 주가 상승분을 반납한 채 모호한 방향성을 보였다. 실제로 올해도 지난 21일 종가 기준으로 종목별 1개월 주가 흐름을 보면 대차잔고가 대부분 정(+)의 방향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의 주가 상승 흐름은 거시경제 리스크나 기업 실적 악화와는 무관한 오로지 수급에 의한 현상"이라며 "미국발 불확실성 속에 기업 실적도 꾸준히 하향 조정되고 있어 다수 종목에서 상승세가 나오는 게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대차잔고 비율이 5%를 넘고, 12개월 선행 EPS 증가율이 시장보다 낮거나, 12개월 선행 PER이 시장 평균보다 현저히 높다면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공매도가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에서는 공매도 재개로 주식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회귀하고, 과대 평가된 종목들의 가격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최근 급등한 종목은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 단기적인 가격 변동성에 대비해야 한다. 일례로 반도체 관련 업종은 몇 년간 주가가 급등해 공매도 재개 후 단기적인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과세 우려로 저평가된 자동차주는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가 연기되면서 공매도 재개 이후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