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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주둔 없이 안정적 지배 가능”
유럽·중동 국가들은 일제히 비판
‘주변국 자극하려 도발’ 해석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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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소유 발언을 두고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가자지구가 미국의 소유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데 의견과 함께 단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아랍국가들을 자극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전술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다만 이번 사안으로 가자지구 소유권에 대한 논의는 다시 한번 뜨거워질 전망이다.
트럼프 청사진에 이스라엘 반색
트럼프 대통령은 6일(이하 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게시물에서 “싸움의 결말이 나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에 의해 미국에 넘겨질 것”이라며 “가장 위대하고 화려한 개발 중 하나의 건설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지역에 미군이 주둔할 수 있다는 국내외의 우려와 관련해서는 “미국 측 병사는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가자지구는 안정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을 주변 제3국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가자지구 소유권을 넘겨받아 휴양지로 개발한다는 깜짝 구상을 밝혀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전쟁 후 남은 무기 등을 수거하고, 지역 주민에는 일자리와 주거 안정을 공급해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용감한 계획”이라며 반색했다. 카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하마스는 가자 주민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군에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 계획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고 선언한 스페인과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3개 국가를 직접 언급하며 “가자 주민의 이주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구상에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아누아르 엘 아누니 EU 집행위 외교안보 담당 대변인은 “가자지구는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일부”라고 짚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의 대화가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이주에 반대한다는 그간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중동 주요 국가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이집트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국제사회는 특정 집단을 정책적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행위를 ‘범죄’로 간주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구상은 ‘인종 청소’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현지 매체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 주민들의 자치권을 고려하지 않았다” 꼬집으며 “지정학적 판도라의 상자를 사실상 다시 연 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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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 가능성↓, ‘평화 중재자’로 가는 한 걸음
다만 이 같은 가자 구상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외교계의 중론이다. 당장 아랍 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들 국가는 이미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랍 국가들의 협력을 얻지 못할 경우 미국은 직접 개입해 주민 이주를 추진해야 하는데, 미국 내부의 반발 또한 극심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구상이 영토 팽창의 야욕이 아닌, 중동 국가들을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하려는 압박 수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포스트는 5일 “트럼프는 중동에서 ‘풀을 건드리는’ 제안을 내놨다”며 “그의 급진적인 정책을 본 역내 일부 국가가 가자지구 사안에 더 솔직하게 접근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끼를 던지거나 도발함으로써 상대를 움직히고, 종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루살렘포스트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빠져나가면 하마스는 더는 그들을 인간 방패로 쓸 수도, 인도적 지원을 착취할 수도 없게 된다”며 “가자지구의 폐허화로 이득을 얻던 주변 국가와 조직으로선 문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역시 “트럼프의 가자 구상은 실현되지 않더라도 역내를 확실히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운신 폭을 확대하기 위해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19일부터 교전을 멈추고 휴전 및 포로 교환 협상에 돌입한 이스라엘·하마스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연정 내 극우 파트너를 달래야 하는 만큼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종전을 앞당기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세계 평화의 중재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의 역내 최대 라이벌인 이란의 약화를 유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핵무기 개발 경로 등을 차단하기 위해 이란에 최대 압박을 가하도록 하는 안보 각서에 서명했다. 해당 각서에는 대(對)중국 수출을 포함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도록 미국 정부 기관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풀어 준 탓에 이란이 핵무기 개발 진전을 이뤘고, 이란이 지원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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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활용 둘러싼 소유권 논란 지속 전망
한편, 이번 논란으로 가자지구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의 또한 재점화할 전망이다. 중동 시나이반도 북동부에 위치한 가자지구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이후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직후 가자지구는 주변 아랍 5개국 군대의 공격을 받아 포위됐다. 이들 5개국은 1949년 휴전을 선언하며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요르단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은 서예루살렘을 점령한다는 협정에 사인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중동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대신 가자지구의 통제권을 잡았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을 군사적 통치하에 뒀다. 2005년에는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군이 철수했지만, 경계선과 영공 및 해안선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을 오랜 시간 통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06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는 이듬해 격렬한 무력 충돌 끝에 경쟁 상대였던 파타를 가자지구에서 몰아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해당 지역으로 유입되는 물품 대부분을 통제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여러 차례의 분쟁을 벌이면서 그때마다 가자지구 주민들을 방패로 내세웠다. 2023년 10월 시작돼 15개월가량 이어진 전쟁 또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가자지구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것은 단순 영토 확장을 넘어 자원 활용 등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상당하다. 2019년 UN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해안과 점령지에는 30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됐다. 가자지구 인근 서안지구에만 15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게 UN의 연구 결과다.
이에 앞서 1999년에는 가자지구 해안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가스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이 출범한 유럽민주화운동(DiEM 25), 친환경 단체 메나펨(MENAFem) 등 여러 비정부기구(NGO)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천연가스”라고 주장해 왔다.
아티브 쿠부르시 맥매스터 대학 경제학 교수 또한 이와 관련해 “중동에서는 석유와 가스를 떼놓고 분쟁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짚으며 “공유된 공동 자원을 활용하는 규칙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누가 더 큰 총과 더 큰 전투기를 가졌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입에 차질을 빚고 있는 지금, 이 같은 자원 활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