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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측 내달 중순까지 인수 의향자 물색 中 국영기업 비롯해 국내 기업과 협상 진행 대규모 '고객 데이터' 보유, 인수 매력 있어
지난해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일으키고 기업회생을 신청한 티몬·위메프(티메프)가 인수 대상자를 찾고 있다. 회생계획안 제출 전 우선협상대상자부터 확정한다는 계획인데 티몬과 위메프 모두 자본 잠식 상태지만 수천만 명의 고객 데이터를 보유한 만큼 이커머스 확장을 노리는 기업에는 매력적인 매물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재 복수의 국내 기업과 중국 국영 중핵집단유한공사(CNNC·중핵그룹) 계열의 사물인터넷(IoT) 데이터그룹이 회사 측과 협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아 매각이 유리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티메프의 매각 주관사를 맡고 있는 EY한영회계법인은 내달 중순까지 인수 의향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티메프는 지난해 7월 기업회생을 신청한 후 같은 해 9월부터 공식적인 기업회생절차에 착수했다. 매각은 스토킹호스(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공개입찰) 방식으로 이뤄진다. 당초 일괄 매각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는 분리 매각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EY한영회계법인은 금융사와 이커머스 기업 등 총 63곳에 투자설명서를 배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15일 열린 '티메프 사태 관련 채권자 관계인 설명회'에서 조인철 티메프 운영총괄 법정관리인은 중국 국영기업 CNNC를 비롯해 복수의 국내 기업이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다만 티메프 측이 국내 기업에 매각되기를 원하고 있어 2월 중순까지 인수 의향자를 추가로 찾을 계획이다. CNNC는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 원자력 에너지 기업으로,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2018년 중국핵공업건설집단(CNECC)과의 합병을 통해 현재는 총자산이 5,000억 위안(약 98조6,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총부채는 각각 9,936억원, 3,318억원으로 두 곳 모두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EY한영회계법인에 따르면 티몬의 총부채는 1조191억원, 위메프의 총부채는 4,462억원으로 집계됐다. 재무 상태가 악화한 탓에 현재 두 곳 모두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티몬의 청산가치는 136억원, 계속기업가치는 -928억원으로 추산됐으며 위메프의 청산가치는 134억원, 계속기업가치는 -2234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을 청산하는 것이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높다는 의미다.
회생계획안 제출 전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예정
업계에서는 티몬과 위메프의 부채가 각각 1조원, 4,000억원을 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생 기업 M&A(인수합병)의 경우 기업가치가 낮은 만큼 인수자는 기업의 보유 자산에 초점을 맞추는데 티메프가 보유한 고객 데이터의 잠재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티메프의 가입 고객을 합치면 수천만 명에 달한다"며 "이는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고객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커머스 사업을 키우고 싶은 기업에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발채무가 없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는 모든 채권자가 법원에 신고하게 돼 있어 우발채무가 없다. 더욱이 티메프를 인수하더라도 회생계획안에 따라 부채는 대부분 탕감한 상태로 인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각 대금으로 우선 일부 변제한 후 나머지 부채를 출자 전환해 무상감자를 진행하면 부채가 남지 않게 되는 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티메프 인수자는 헐값에 대규모 유통망을 확보할 기회를 얻는 셈"이라며 "출자 전환으로 주주 수가 늘어나겠지만 부채가 탕감되면 인수 매력은 있다"고 말했다.
티메프 측은 기업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한이 올해 4월까지지만 딜 클로징은 그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 관리인은 "2월 중순까지 인수 의향자를 찾은 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 구체적인 일정이 잡힐 것 같다"며 "미정산 피해 판매자 비상대책위원회와도 적극적으로 소통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티메프 측의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은 다음 달 7일까지지만 제출 기한을 연장해 매각 자금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양사 모두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없어 매각이 전제되지 않으면 회생계획안을 작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신세계 협력 등 中 이커머스 침투 가속화
이런 가운데 국내 이커머스업계의 관심은 이번 티메프 인수전에 참여한 중국 국영기업 CNNC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CNNC는 자회사인 IoT 데이터 그룹을 중심으로 한국산 제품의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 티메프 인수전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계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가 신세계그룹 산하 G마켓과 손을 잡은 데 이어 테무까지 올해 정식으로 한국지사를 설립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자국 제품을 수출하려는 중국의 공세가 매서운 상황에서 향후 중국기업에 매각되는 국내 업체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랜 기간 내수 부진에 시달려온 유통업체도 중국의 손길을 내심 반기는 눈치다. 과거 소셜미디어(SNS)에서 '멸공'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중국을 비판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알리바바와 동맹을 맺은 것을 두고도 업계에서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SK그룹의 11번가도 5,000억원에 매물로 나왔지만 인수가 안 되는 상황에서 신세계그룹도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업계는 G마켓이 알리익스프레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200여 개국 해외 네트워크에 확보하고 전 세계로 판로를 넓혀 실적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중국 이커머스의 공세는 '대중국 관세 60%'를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관세 부담이 높은 미국을 피해 한국에 사실상 올인하는 방향을 택하고, 한국 셀러들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 셀러의 해외 상품 판매를 지원하는 글로벌 셀링 프로그램을 출시하고 판매자 모집을 위한 유인책으로 수수료 0%와 보증금 0원 정책까지 내세웠다. 중국 제품을 한국에 판매하는 동시에 한국을 거점으로 유럽, 동남아시아 등으로 상품을 재수출해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