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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취약계층 상위권 보장으로 진학 기회 확대 동아시아, 사교육·편법 경쟁으로 제도 왜곡 준비와 안전장치 없으면 불평등 심화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은 2024년 29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된 수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만 6세 미만 아동의 47.6%가 과외를 받고, 이 중 25%는 두 살 이전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이 더해진다. 이는 한국 교육 경쟁이 얼마나 조기화·과밀화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가정이 제도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에서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같은 제도도 본래 취지를 벗어나 대규모 편법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반면 칠레에서는 취약계층 고교 상위권 학생에게 선발 대학 진학을 보장했을 때 실제 접근성이 넓어졌다. 효과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정책적 성과는 분명했다.

접근에서 유인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둘러싼 논의는 대체로 취약계층 학생의 대학 진학 기회를, 기존 합격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얼마나 확대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변수는 따로 있다. 제도 변화에 가정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는 점이다.
대학 진학자가 적고 사교육 규모가 크지 않은 사회에서는 전형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상위권 학생을 우대하면 실제로 취약계층의 진학률이 높아지고 부작용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고 가정이 일찍부터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주거·학교를 전략적으로 옮길 수 있는 사회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경우 전형은 곧바로 전학 경쟁이나 불공정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이런 행동 반응을 제도 설계에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맞춰져야 한다.
칠레: 모델의 성과와 한계
칠레는 제도의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전국 단위로 저소득층 고교 졸업생 상위 15%에게 대학 입학을 보장한 결과, 실제 진학률이 높아졌고 더 경쟁력 있는 전공에 진입하면서 장래 소득도 개선됐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기준선에 가까운 학생들은 중도 탈락 위험이 컸고 이후 성과도 낮았다. 고교에서 준비한 학업 역량과 대학 수준의 요구 사이에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또 일부 학생은 합격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고교 단계에서 학업을 소홀히 했다. 반면 제도의 조건과 대학의 요구 수준을 명확히 안내받은 학생들은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진학 선택을 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만으로도 불필요한 기대와 준비 부족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칠레 사례는 사회적 배려 전형의 성패가 ‘환경’과 ‘보완 장치’에 달려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주: 예상 학교 석차 vs 실제 학교 석차(왼쪽 그래프), 예상 대학 입시 점수 vs 실제 대학 입시 점수(오른쪽 그래프) 학생들의 주관적 기대치(파란 실선), 실제 결과(초록 점선)
동아시아: 가족이 제도보다 빠를 때
동아시아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사실상 보편화됐고 준비 문화는 조기·집중적으로 굳어졌다. 통계청은 2023~2024년 사교육비가 연이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제 보고서에 따르면 유치원 이전 아동의 절반 가까이가 학원에 다니며, 서울 부촌일수록 비율이 더 높다. 학령기 아동의 사교육 참여는 이미 포화 상태이고, 정부와 OECD는 이를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교육 경쟁 과잉과 연결 짓는다.
중국은 지역별 모집 정원과 시험 제도 차이로 인해 가족들이 호적을 옮기거나 학교를 바꿔 합격 확률을 높이는 사례가 흔하다. 입시를 위한 이주가 일상화된 것이다. 이는 가정이 입시 제도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학교별 상위권 보장’ 방식은 곧바로 전학, 거주지 이동, 학교 재배치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가정이 이미 오랜 기간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작은 기회까지 추구해 온 현실 때문이다.
제도 설계의 원칙
해법은 명확하다. 가정이 제도의 빈틈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들고, 입시 전략이 아니라 학업 준비에 자원을 집중하게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주지 기반 지표를 활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장기간 거주 기록, 지역별 교육 여건, 가구 소득을 함께 검증하면 주소 이전이나 전학을 통한 편법 참여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입학 기회를 조건부로 부여해 사전 등록과 보충 과정 이수를 전제로 하면 학생이 대학 진학 전 필요한 기초를 갖추게 된다. 마지막으로 갑작스러운 전학이나 주소 이전 같은 이상 징후를 감시하고 기준선을 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들은 가정의 노력을 편법 경쟁이 아니라 실제 학업 역량 축적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준비를 조건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좌초하는 지점은 학업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학생을 곧바로 높은 수준의 과정에 편입시킬 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대학 예비 과정 사례는 일관된 결과를 보여준다. 수 주에서 수개월간 필수 기초를 체계적으로 이수했을 경우, 학업 성취와 지속률이 뚜렷하게 개선됐다. 반면 며칠 단위의 단기 과정은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 경험은 중요한 결론을 남긴다. 전형은 학점이 인정되는 예비 과정과 반드시 결합돼야 하며, 본 과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학생이 불이익 없이 공식 수료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입학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제도 차원에서 준비를 필수 조건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론과 검증
특혜 전형은 결국 기준을 낮추고 제도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칠레 사례는 정교하게 설계될 때 평균 성과가 오히려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패는 준비 격차가 큰 일부 학생에게 집중됐을 뿐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치열한 경쟁 환경을 이유로 더 강력한 전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제도가 가정의 전략적 조정에 활용된다면 이는 학습이 아니라 편법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의 사교육 투자와 중국의 입시 이동은 가정이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미국에서는 SAT나 ACT 점수를 제출하지 않아도 모든 지원자가 심사 대상이 되는 ‘시험 선택제(Test-Optional)’가 형평성 문제를 해소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는 엇갈린다. 일부 대학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 비율이 확대됐지만, 다른 분석에서는 저소득층 고득점 학생이 점수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회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은 다시 시험 제출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의도가 아닌 동기를 설계
가정은 입시 제도의 작은 변화에도 예산과 거주 계획을 신속히 조정한다. 이런 환경에서 해외 사례를 단순히 옮겨오는 방식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필요한 것은 우회 여지를 줄이고 준비 과정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장기간 거주 기록을 활용한 지표, 학점으로 인정되는 보충 과정과 연계된 전형, 경계선 학생의 무작위 선발, 학업 노력과 성과를 연결하는 증거 공개 등이 그 예다.
대응성이 낮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장치가 이동성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처럼 대응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단순한 제도 도입만으로는 불평등 완화가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의 취지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실제로 노력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Preferential Imports of High Elasticity Systems: Why Chile's Profits Don't Reach East Asia and Effective Policy Design.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