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음주·성비위 등 징계대상 직원에 성과급 5년간 공공기관 정직 직원이 받은 보수액 61억 지방의회, 구속으로 활동 중단돼도 수당 그대로

한국산업은행이 올해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처분을 받은 임직원에게는 보수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징계를 받아도 급여는 꼬박꼬박 챙기는 관행이 만연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처다. 공무원보다 더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공기관 직원들은 그간 정직 처분을 받아도 기본급은 물론 성과급까지 그대로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지침을 통해 공공기관 임직원에게도 공무원과 같은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산은, 1월부터 정직 기간 보수 지급 않기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노사 합의로 올해 1월 1일부터 특정 사유로 정직을 받은 직원에 대해 정직 기간 중 보수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산은은 이전까진 정직 기간에도 기준급(기본급)의 40%내에서 보수를 지급해 왔다. 국가공무원법상 정직은 파면·해임·강등 다음의 중징계로 공무원이 정직 처분을 받으면 그 기간 보수 전액이 삭감된다. 하지만 공무원과 달리 공공기관은 자체 보수 및 직원 상벌 규정에 근거해 정직 처분 직원에 대해 기본급에 성과급까지 그대로 지급하는 곳이 많다. 정직 처분을 받으면 보통 1~6개월 동안 신분은 유지하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는데, 직무 성격의 급여만 삭감하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4 정기국회·국정감사 공공기관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중소기업은행 등 49개 공공기관은 정직처분 대상자의 처분 기간에도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력기술,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등은 재산 관련 비위로 징계를 받은 직원에 성과 평가에서 S등급을 부여했으며 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은행,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5개 기관은 성 관련 비위 징계자에 S등급 또는 A등급을 부여했다. 음주운전 관련 비위로 징계를 받은 직원에 최고 평가를 내린 기관도 있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 1명에 S등급, 3명에는 A등급을 부여했고 신용보증기금은 1명을 A등급으로 평가했다.
정부는 '공기업 · 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에 공공기관장이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징계령'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직원 징계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복무관리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의 횡령·유용, 채용비위,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음주운전 또는 음주측정에 대한 불응행위로 징계처분을 받은 직원에 성과평가 시 최하위 등급을 부여하도록 내부규정을 마련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기업 · 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 등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을 처분 기간 중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보수 전액을 감할 것을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다수 공공기관이 이와 같은 지침을 무시하면서 부적절한 인사 관리를 하고 있는 형세다.

금융위 산하 5개 공공기관, 정직 처분 직원들에게 보수 지급
평균 연봉이 높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금융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2024년 7월 31일까지 금융위 산하 공공기관 중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에게 부적절한 보수를 지급한 곳은 총 5곳이다. 산은은 이 기간 정직 처분 직원 3명에게 1,800만원을 지급했다. 이밖에 중소기업은행은 8명에 1억4,680억원을, 신용보증기금은 3명에 2,677만원을 지급했으며, 한국자산관리공사(2명, 942만원), 주택금융공사(1명, 659만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주택금융공사는 2023년 10월 정직 기간엔 보수를 지급하지 않기로 내부 규정을 개선했으며, 산은도 올해 1월부터 바뀐 규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외엔 여전히 정직 처분 직원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기본급인 본봉의 60% 내에서 보수를 지급하고 있으며,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기준월액(기본급-직무급)의 80%까지 지급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연봉의 35% 수준이다. 신용보증기금은 지급 비율에 대한 규정이 없다. 기본급에서 직무급을 뺀 금액을 모두 지급하는 것인데, 이는 전체 임금의 33% 수준이라는 것이 신보 측의 설명이다.
3개 기관 모두 내규 개정을 위해 노조와 협의 중이라고 하지만, 논의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수년 전부터 ‘정직 기간 중 보수 지급 금지’ ‘중징계 처분 또는 금품·향응 수수, 횡령,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음주 운전에 대한 징계 시 성과급 지급 금지’를 노사 협의 안건으로 올리고 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금융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준수할 경우 더 높은 경영실적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측은 해당 안건을 거듭 올리고 있다”며 “취지엔 공감하나, 다른 현안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조건 없이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징역 살아도 매달 367만원 받는 시의원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는 지방의회도 예외가 아니다. 정계에 따르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혐의로 구속된 국민의힘 조현영(연수4)·무소속 신충식(서구6) 인천시의원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도 매달 수백만 원의 월정수당을 챙겨갈 수 있다. 그동안 시의원들이 의정활동비·여비 및 월정수당 지급기준을 손보지 않아서다.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올해 시의원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월정수당과 의정활동비는 각각 약 367만9,000원, 200만원이다. 매달 567만9,000원을 받는 셈으로, 연봉으로 치면 6,800만원 수준이다. 월정수당은 지방의원 직무활동에 대해 지급하는 비용, 의정활동비는 의정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거나 이를 위한 보조 활동을 위한 비용이다.
하지만 시의원들의 경우 ‘무노동 유임금’이 가능하다. 구속 또는 출석정지 징계를 받아 의정활동을 하지 못해도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을 모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의회 운영조례 22조 6항에 ‘의원이 공소 제기된 후 구금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의정활동비 및 여비를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어서다.
조 의원과 신 의원은 현재 구금된 상태지만 검찰이 기소(공소 제기)하기 전 단계다. 현행 조례에서 정한 ‘공소 제기된 후 구금상태에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 의원에 대한 기소 여부는 앞으로 최대 30일, 이후 구속 또는 불구속 여부도 최대 2개월이 걸린다. 뇌물공여 혐의를 받아 구속된 시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아예 중단되지만 최대 석 달간 이들은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현행 지급기준 규정에는 월정수당 지급을 제한하는 내용이 아예 없다. 시의원들이 구속기소되고, 재판에서 징역형이 확정돼도 매달 367만9,000원에 달하는 월정수당은 끊을 수 없다. 시의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는 6월 열릴 제302회 정례회에서 의회 운영 조례개정안을 상정할 방침이지만, 지급기준이 개정돼도 조 의원과 신 의원의 의정활동비 및 월정수당은 매달 지급될 예정이다. 법률 불소급 원칙에 따라 조례 개정 효력이 이전 사건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