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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R, 국가별 무역 평가 보고서 공개 소고기·망 사용료 등 '단골 민원' 대거 등장 상호관세 부과 후 대미 협상서 쟁점화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다음 달 2일 상호관세 발표를 이틀 앞두고 각국의 무역장벽을 담은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정부가 대량 무기 수입시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절충교역을 처음으로 지적했고 수입차 환경 규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 망 사용료 등도 주요 무역장벽으로 조목조목 거론했다. 미 업계의 단골 민원이 대거 포함됐지만 관세 전쟁 속도전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의 근거 자료로 쓸 수 있어, 향후 대미 무역 협상에서 이 같은 비관세 장벽이 쟁점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USTR, 韓 비관세 조치 지적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공개한 국가별 무역평가보고서(NTE)에서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 확대는 여전히 미국의 주요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USTR은 미국 정부가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 관련 부품 규제에 문제를 제기해왔다면서 자동차 업계가 관련 규정의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우려를 표명해 왔다고 했다.
USTR은 또 자동차 수입과 관련한 법을 위반할 경우 한국 세관 당국이 업체를 형사 기소할 수 있지만 세관이 한국에서 제조된 차량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USTR은 제약 및 의료 기기 산업에 대해서도 한국의 가격 책정 및 변제 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부가 제안한 정책 변경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된다고 말했다.
USTR은 한국의 혁신제약사(IPC) 인증 정책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이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특정 기업이 세액 공제, 연구개발 지원, 더 유리한 가격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이지만, 혁신제약사 인증을 받지 못한 기업에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에 투명성을 강화하고 이해당사자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해 제약 및 의료 기기 산업과 관여를 개선하도록 계속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망사용료·플랫폼법 등 韓 디지털 무역장벽도 거론
이어 USTR은 미국산 소고기 30개월령 이상 수입 제한, 네트워크망 사용료, 공공 부문에 적용되는 클라우드 서비스 보안인증 등 미국 업계에 불공정하다고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무역장벽도 두루 거론했다. 지난해 보고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별 비관세 장벽까지 꼼꼼하게 살피겠다고 예고한 만큼 주목도는 예년과 다르다.
USTR은 한국이 30개월령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 2008년 소고기 시장을 미국에 완전히 재개방하는 양자 협약을 체결했지만 이 같은 '과도기적 조치'는 무려 16년간 유지되고 있다"며 "소 연령과 무관하게 다진 소고기 패티, 육포, 소시지 수입을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디지털 무역장벽도 열거했다. 보고서는 넷플릭스 같은 해외 콘텐츠 공급업체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에 네트워크망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법안을 지적하며, 미국이 지난해 한국 정부에 이와 관련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고 썼다. 정부가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법안과 관련해서는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수 미국 대기업과 함께 한국 기업 두 곳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수의 다른 주요 한국 기업과 다른 국가의 기업은 제외된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위치 기반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보호되는 데이터와 관련한 정부의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사용 금지 또한 무역장벽으로 꼽았다.

언급 건수 40여 건에서 줄어든 상황, 산업부 "실무 협의 지속"
USTR의 국가별 무역 평가 보고서는 다음 달 2일 상호관세 발표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그동안 미국 측이 여러 차례 제기해 온 내용이 반복해 언급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에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터라, 미국 측이 협상 과정에서 '지렛대'로 삼는 등 쟁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보고서에 들어간 비관세 장벽 이슈 등은 미국 산업계가 오래전부터 문제 삼아온 것으로, 그 건수가 이전보다 줄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2023년 이전까지 매년 40건 이상이 지적됐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건대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산업부는 USTR이 자국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던 올 2월 정부 의견서를 제출하고 대면 협의를 통해 한국의 비관세장벽이 다른 주요 교역국 대비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님을 적극 설명해 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가 이전과 달리 미국의 대한국 상호관세 부과 조치의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국 역시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보고서에 제기된 사안에 대해 관계부처 및 이해관계자와 긴밀히 협의해가며 대응 방안 마련을 모색하는 동시에 미국 측과도 실무채널과 한-미 FTA 이행위·작업반 등을 통해 당국의 국내 비관세조치 관련 진전 노력을 설명할 것”이라며 “상호관세 등 주요 현안에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대응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