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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이탈리아 노동 개혁, 고용 창출 대신 실직자만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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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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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쉬워졌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아
성장 부진 속 개혁 강행
개혁 후 재취업까지 2.5년 걸려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2015년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총리는 고용유연성 강화를 핵심 목표로 노동 개혁법안(the Jobs Act)를 도입했다. 이 노동 개혁법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기업의 고용 문턱을 낮췄다. 부당해고 시에도 복직 대신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꿔 해고 부담을 줄였고, 실직자의 재취업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도입 10년이 지난 지금, 이 법은 오히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양극화를 심화시킨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ChatGPT

수요 없는 규제 완화가 낳은 착시

2011년부터 2024년까지 이탈리아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0.2%로 유로존 평균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통계청(Istituto Nazionale di Statistica, ISTA)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0.6%로 낮췄고, IMF는 이보다 낮은 0.4% 성장에 그칠 것으로 봤다. 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고 규제만 완화되자, 기업들은 인력을 늘리기보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해고를 선택했고 노동자들은 더 큰 불안에 내몰렸다.

실업자 낙인만 고착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ntre for Economic Policy Research, CEPR)와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실직자 분석에 따르면, 개혁 이후 해고자의 재고용 확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과거에는 실직 이력이 재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33% 수준이었으나, 개혁 이후에는 66%까지 증가했다. 해고 경력이 있는 사람은 이후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는 이탈리아 고유의 고용 문화와 관련이 있다. 근속 연차에 따라 승진이 이뤄지고, 이력서의 공백은 ‘문제 있는 이력’으로 간주되는 관행 속에서 해고 이력은 ‘낮은 직무 적합성’이라는 부정적 신호로 작용한다. 결국 노동 개혁은 유연성 제고보다 해고자 낙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고용 지표 이면의 질적 악화

2025년 4월 기준 이탈리아의 공식 실업률은 5.9%로 200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청년 실업률도 2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시기 비경제활동인구 비율은 33.2%로 유로존 두 번째로 높았고, 전체 노동시간은 줄어드는 등 고용의 질은 악화됐다. 기업들은 단기 계약 중심으로 인력을 늘렸고, 노동자는 고용됐지만 일자리는 불안정해졌다는 의미다.

행정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해고된 노동자의 경우, 해고 후 첫해 중위소득이 27% 급감했고, 5년이 지나도 해고 전 수준보다 11% 낮았다. 이 중 약 4%포인트는 순수하게 노동 개혁의 영향으로 분석됐다.

해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노동 개혁 이후 집단은 개혁 이전과 비교해 월평균 약 250유로(37만원) 덜 벌고 있었고, 재고용 확률도 약 3%포인트 낮았다. 정규직을 다시 얻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개혁 이후 실직자의 정규직 전환율은 개혁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평균 2년 반이 걸렸다. 애초 기대했던 ‘신속한 재배치’는 ‘장기 대기’로 바뀐 셈이다.

                   노동시장 충격에 대한 제도 개혁의 영향 비교 (해고 전후 36개월 추적)
주: 상단 그래프 -노동 개혁 이후 집단(빨간 선) 및 노동 개혁 이전 집단(파란 선)의 임금수준 변화(a), 재취업 확률 변화(b), 정규직 재고용 확률(c)/하단 그래프-개혁 효과와 신뢰구간(회색 그림자)의 취업 시점 임금 평균 효과(d), 재취업 확률의 평균 효과(e), 정규직 재고용 확률의 평균 효과(f)

해고 유형에 따른 회복 격차

해고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사유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집단해고 대상자는 자발적 이직자보다 더 큰 소득 손실을 겪었고 회복에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집단해고 대상자는 나이가 많고 임금이 높은 편인데, 이들은 해고 후 12개월 시점에서 소득이 18%까지 하락했고, 32개월이 지나서야 해고 전 수준을 회복했다.

노동시장 성과에 대한 제도 개혁 효과: 이직 유형별 비교
주: 해고 여부에 따라 나눠 본 개혁 효과와 신뢰구간(회색 그림자)의 취업 시점 임금(a), 재취업 확률(b), 정규직 진입 확률(c)

반면 자발적 이직자는 1년 후부터 소득이 점차 회복세에 들어섰다. 이는 해고 비용 완화가 모든 유형의 이직에 동일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정책 설계의 단순화된 가정을 반증한다. 이탈리아처럼 공백에 민감한 노동시장에서는 집단해고가 더 부정적인 신호로 작용한다.

성장 없는 시장의 유연성

재취업이 더딘 또 다른 이유는 ‘수요 부족’이다. 이탈리아는 2015~2024년 사이 연평균 8만 5,000개의 순 고용을 창출했는데, 이는 1990년대의 4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전체 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소규모 업체들은 노동 개혁법의 해고수당 규정을 이용해 고임금 인력을 먼저 줄였고, 수요가 회복되기 전까지 신규 채용을 보류했다. 그러나 주문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고령화까지 겹쳐 생산가능인구도 줄고 있다. OECD는 2030년까지 이탈리아의 생산가능인구가 150만 명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구직자 수가 줄자 기업들은 인력 확보 경쟁보다 자동화에 투자했고, 이는 다시 고용 회복을 지연시키는 터널 효과(Tunnel effect)를 고착시켰다.

드러나지 않은 건강 비용

해고의 대가는 소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건강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해고된 사람의 우울 증상 호소율은 6%포인트 상승했으며, 이는 유럽연합(EU)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고혈압과 불면 증세도 함께 증가했다. 해고수당이 초기 충격을 완화하더라도, 5년 넘게 이어지는 소득 격차와 불확실성은 만성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이는 공공 의료비 부담으로 전가됐다. 결국 노동 개혁법은 기업 비용을 줄이는 대신, 공공 의료 재정에 부담을 전가한 셈이다.

환경 없는 개혁, 국제 사회가 말해주는 것

노동 개혁법은 미국식 해고 자유 모델을 그대로 이식했지만, 스페인이나 프랑스처럼 거시경제적 지원이 없었다. 스페인은 부가세 인하, 고용정책 확대, 유럽중앙은행의 신용 공급과 함께 개혁을 병행했고, 프랑스도 마이너스 실질금리와 급여세 감면이 뒤따랐다. 반면 이탈리아는 구조 개혁만 단독으로 시행했다.

EU통계청(Eurostat, ESAT)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14~2019년 이탈리아가 스페인처럼 연 1.8% 성장했다면 약 42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할 수 있었고, 이는 노동 개혁법으로 인한 해고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다. 제도의 효과는 설계가 아니라 환경에 달려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조건이 갖춰질 때 작동하는 유연성

그런데도 희미한 희망은 있다. 2025년 4월, 재생에너지 장비 생산을 중심으로 산업 생산이 1% 증가했다. 이는 EU의 복구 및 회복력 기금(Recovery and Resilience Facility, RRF)과 맞물려 녹색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된 결과다. 이론상 중간기술 일자리가 창출될 기회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험은 자본 집약형 투자만으로는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경고를 남긴다. 이를 방지하려면, 보조금 집행 시 일정 비율 이상을 수습생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건을 의무화해야 한다.

해고 자유가 아닌 회복 설계가 관건

노동 개혁법을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단순히 해고를 쉽게 만들었다는 점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실직 이후의 회복 경로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중심에 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감세 혜택을 주고, 실업률이 높은 지역엔 해고수당 상한을 높이는 방식, 기술 훈련 이력을 인정하고 교육 이수자에 대한 세제 혜택 부여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유연성은 실직자에게 회복의 사다리를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능할 수 있다.

제도의 수입이 아닌 맥락의 설계

노동 개혁법은 구조조정은 앞당겼지만, 고용 확대에는 실패했다. 성장이 정체된 구조에서 유연성만 강조한 개혁은 실직자의 낙인을 강화하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키웠다. 유연성은 법률로 규정된 기능이 아니라, 시장의 생태와 함께 작동하는 구조다. 제도의 효과는 그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에 달려 있다.

원문의 저자는 마르코 프란체스코니(Marco Francesconi) 에식스대학교(University of Essex) 교수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Employment protection legislation reforms and the rising cost of job los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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