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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發 관세 전쟁, 대미 투자 유도 실패했다? "시그널 게이트 방치하고, 연준 때리고" 트럼프의 '무대뽀' 정치 신용평가사 무디스, 美 국가신용등급 강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단적인 관세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이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율을 올리면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투자 유도 효과가 발생했는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장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아슬아슬한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미국을 둘러싼 리스크는 커져만 가고 있다.
트럼프 관세 정책 성과 '의문'
18일(이하 현지시간)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활용해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려고 했으나, 실제로 그런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과 외국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다시 미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이 촉진될 것이라고 주장해 온 바 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관세 정책의 효과로 올해 1분기 국내 총투자가 22%가량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폴리티코는 데사이 대변인이 제시한 수치가 관세 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에 집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이 관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결정된 대미 투자 계획들까지 ‘관세 실적’으로 분류, 정책 효과를 과장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폴리티코는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이 수시로 투자 계획을 바꾸거나 시행을 보류하고 있는 만큼, 관세가 기업들의 투자에 미친 실질적 영향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관세 정책이 '역효과'를 내며 미국이 재정 위기를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세수 확대는커녕 감세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에 자신의 각종 경제 정책을 한데 담은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주문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세금 감면 및 일자리 창출법(TCJA)의 연장 운영 △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팁 등의 비과세 처리 등이다. 미국 시민단체 택스파운데이션에 따르면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 정부 세수는 2034년까지 약 4조 달러(약 5,600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악수 누적되며 신뢰 무너져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감세 정책 외에도 곳곳에서 시장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있는 위태로운 수를 두고 있다. ‘시그널 게이트’로 불리는 군사 기밀 유출 논란의 중심에 선 마이크 왈츠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곧장 해임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왈츠 보좌관은 지난 3월 민간 메신저 앱인 ‘시그널’의 채팅방에서 후티 공습 계획 등 민감한 군사 정보를 외교·안보 인사들과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백악관 내 신뢰를 잃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외부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한동안 왈츠 보좌관의 해임을 미뤘고, 이달 들어서야 겨우 그를 경질했다.
독립적으로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과도한 압박 역시 문제로 꼽힌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지속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해 왔다. 고강도 관세 정책으로 인해 물가 상승·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촉구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17일 "내가 그(제롬 파월 연준 의장)를 해임하길 원한다면 정말 빠르게 그만두게 할 것"이라며 "그에게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글에서도 "파월은 유럽중앙은행(ECB)처럼 오래전에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거듭 금리 인하를 종용했다.
이 같은 압박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인플레이션은 없고, 휘발유·에너지·식료품 등 다른 모든 것의 가격이 사실상 내렸다”며 “연준은 유럽과 중국이 한 것처럼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너무 늦는 파월(Too Late Powell)’에게는 뭐가 문제일까, 번영할 준비가 된 미국에 불공평한 거 아닌가”라며 “그냥 모든 것을 일어나게 놔두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복되는 금리 인하 주문이 '악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정책 입안자는 통상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싶어 하는데, 이를 무조건 수용하면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연준을 비롯해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들이 독립성을 보장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릴 경우,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러 가치 자체를 신뢰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이는 미국 위험 자산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약달러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美 신용, 더 이상 '최고'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각종 악재가 누적되는 동안, 미국의 국가 신용은 눈에 띄게 훼손됐다. 지난 16일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바로 아래인 ‘Aa1’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무디스 평가에서 미국 신용등급이 Aaa 이하로 미끄러진 것은 1917년 이후 108년 만에 처음이다. 무디스와 함께 3대 신용평가사로 꼽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이미 각각 2011년과 2023년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무디스는 강등 이유로 급격히 불어난 미국의 국가 부채를 꼽았다. 미국 정부 부채 비율과 이자 지급 비율이 지난 10여 년간 유사한 등급의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올해 5월 기준 약 36조2,200억달러(5경744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조6,600억 달러(2,324조원)가량 급증한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출한 금액은 1조1,330억 달러(약 1,586조원)로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아울러 무디스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검토 중인 재정 개편안이 향후 몇 년간 미국의 의무 지출과 재정 적자를 줄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과 감세 정책 등이 재정 적자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에 미국 백악관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집권한 4년간 조용하던 무디스가 편향적인 결정을 내렸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