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트럼프, 아이폰 '미국 생산' 주문 애플 인도 생산 확대에 "원치 않아" 미국 내 아이폰 생산기지 구축 강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플의 인도 내 생산 확대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미국 내 제조를 확대하라고 직접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언은 애플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인도에서의 생산을 강화하는 전략에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애플 美에 공장 짓길 원해, 수년간 참고 봐줬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행사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의 대화를 언급하며 "나는 어제(14일) 팀 쿡과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며 "나는 그에게 '친구, 나는 당신에게 아주 잘해줬어. 나는 당신이 여기(미국)에 5,000억 달러(약 696조원)를 들고 온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인도에 공장을 짓는다더군. 나는 당신이 인도에 공장을 짓는 걸 원하지 않아'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금액은 애플이 지난 2월에 미국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정한 것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나는 팀에게 '이봐, 팀. 우리는 애플이 모든 공장을 중국에 짓는 것을 몇 년이나 참아왔어. 이제는 미국에 공장을 세워야 돼. 우리는 당신이 인도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에 흥미가 없어. 인도는 알아서 잘할 거고 우리는 애플이 여기(미국)에 공장을 짓기를 원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요구에 따라 애플이 미국 내 생산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관세 회피용 우회 생산’으로 간주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압박은 애플이 중국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인도에서 생산을 확대해 온 흐름을 역행하는 발언이다. 최근 애플의 인도 내 아이폰 생산 규모는 220억 달러(약 30조6,000억원)로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현재 전 세계 아이폰 생산량의 20% 가까이가 인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폭스콘, 타타, 페가트론 등 주요 협력사가 인도 내 생산거점을 확대하면서 미국 시장을 위한 생산량을 인도에서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의 이런 전략을 '관세 회피용 우회 생산'으로 간주하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미국이 애플에 특혜를 줬고, 애플은 이제 미국 내 생산을 늘려야 할 때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애플은 실제 미국 내 인프라 투자 확대를 약속하고 있으며, 향후 4년간 5,000억 달러를 미국 내 생산과 연구개발, 데이터센터 및 서버 공장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텍사스 내 고급 서버 공장 건설도 올해 본격화될 예정이다.

애플이 해외 생산 고수하는 이유
하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애플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흔들 수 있는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진다. 애플은 베트남에서도 맥북과 에어팟 생산을 확대하며 지역 다변화를 추진 중이지만, 미국 내에서 아이폰을 전면 생산하기에는 인건비, 부품 조달 문제 등 현실적인 장벽이 크다. 실제로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 생산에 집중하는 데는 값싼 노동력만이 주된 이유가 아니다. 더 주요한 이유는 해외 노동자들의 유연성과 근면성, 그리고 기술력이 자리한다.
뉴욕타임스(NYT)의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었나(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라는 기사에 따르면 애플의 경영진은 아시아 공장의 빠른 물량 조절과 대규모 공급망을 특히 강조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출시 6주 전 아이폰의 플라스틱 액정을 강화유리로 교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잡스가 주머니에 아이폰과 열쇠를 같이 넣고 다녀 아이폰의 액정에 흠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명령을 받은 담당자는 곧장 미국의 코닝(Corning Inc.)에 요청했지만, 대량 생산에 필요한 공간과 비용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자체 생산에 난색을 표했다. 반면 중국의 한 공장은 계약 전부터 새로운 설비를 건설하고 있었던 데다 유리샘플로 가득 차 있는 창고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테스트를 하는 데 기술자를 쉽게 배치시킬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의 조립공장 직원들은 일주일에 6일을 일하며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대량 노동자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에서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기술자를 구하기도 쉽다. 애플과 같은 기업이 미국에서 공장을 세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자를 영입하는 것이다. 아이폰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조립-라인의 노동자 20만 명을 관리 및 감독하기 위해서는 약 9,000명의 기술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정도의 기술자들을 구하는 데 미국에서는 9개월의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중국에서는 6개월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제품 자체의 원천기술은 미국이 뛰어나지만 실제 작업하는 부품 생산 및 조립 과정에서는 미국보다 중국 노동자의 생산성과 기술이 훨씬 뛰어나다. 이렇다 보니 애플은 맥 프로 정도만 미국에서 생산하는 등 미국 내 생산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 특히 아이폰의 경우 부품 90%를 미국이 아닌 해외 공장에 맡기고 있다. 아이폰 조립은 중국, 메모리는 한국과 일본, 칩셋은 유럽, 디스플레이 패널은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하는 식이다.
이에 블룸버그는 "미국에서 아이폰을 완전히 조립하는 것은 현금 여력이 풍부한 애플에조차 극히 어려운 과제"라며 "특히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아이폰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산 아이폰이 출시될 경우 기본 가격이 3,000달러(약 417만원)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애플은 최근 관세 회피를 위해 인도에서 생산한 아이폰을 미국으로 긴급 공수하는 ‘선적 앞당기기(build-ahead)’ 전략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향후 90일간의 미·중 관세 유예 조치가 종료된 이후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