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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기관 전세대출 보증비율 일원화 상환 능력 중심 여신관리체계 확립 한은 “부동산 금융 쏠림 유의 해야”

최근 금융권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자,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금융·가계대출 관리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애초 7월로 예정됐던 SGI서울보증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 보증 비율 하향을 두 달 먼저 조기 시행하고, 7월로 계획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적용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는 금융 소비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세대출 심사 기준↑, 한도는 축소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SGI서울보증과 HUG는 오는 5월부터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기존 100%에서 90%로 조정한다. 3대 보증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현행 보증 비율(90%)과 일원화하기로 한 것이다. 금융당국과 이들 기관은 향후 시장 상황을 점검해 수도권 등 일부 지역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추가 인하하는 것 또한 검토 중이다.
그간 시장에서는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 무분별한 전세대출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HUG 등이 전부 갚아주다 보니 은행은 대출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임차인은 전셋값이 올라도 부담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보증 비율이 낮아지면, 대출을 실행하는 은행으로서는 손해 볼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과 같아 심사가 깐깐해질 수 있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은 예정대로 7월 시행한다. 스트레스 DSR은 금융 소비자의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 가산금리를 얹어 대출 한도를 줄이는 제도로, 3단계 적용 시 연 소득 5,000만원 직장인의 대출 한도는 기존보다 최대 5,000만원까지 축소된다. 스트레스 금리는 기존 0.75%에서 1.5%로 높아진다.
이는 상환능력 심사 중심의 여신관리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추후 내수나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범위 등을 미세 조정할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일관되고 꾸준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DSR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처음부터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고, 꾸준히 나눠 갚는 방식의 여신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주담대뿐 아니라 전세자금 대출까지 까다로워지면서 전세를 구하려는 실수요자들의 혼란도 커지는 모습이다. 여기에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재지정 등 종잡을 수 없는 규제가 전세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거래 규제와 은행권의 높아진 대출 문턱 등으로 매매가 감소하면, 매매 수요가 임대차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전세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게 시장 참여자들의 주된 견해다.

지방 부동산 시장 집중 타격 예상
반대로 3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금리 인하 등으로 매수 심리가 살아나면서 대출 규제 효과를 상쇄할 것이란 분석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공급 부족과 전셋값 상승,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 등이 맞물리면서 하반기에는 오히려 거래량이 늘고 아파트값도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의 공급이 불안정하다는 점도 이 같은 예측에 힘을 싣는다. 한국부동산원 등에 의하면 서울 공동주택 입주 예정 물량은 올해 4만6,710가구에서 내년 2만4,462가구로 줄어든 뒤, 2027년 이후에야 반등할 전망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신축 아파트가 귀해지는 만큼 매매 상승세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주택 공급 과잉으로 미분양 사태가 벌어진 지방의 경우, 대출 한도 축소가 지역 경제와 시장에 추가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장의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지역 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부는 스트레스 DSR 3단계 적용 범위에서 지방 미분양 단지를 제외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바 없다.
잠재 리스크 누적 예의주시하는 한국은행
여러 해석 속에서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에 더욱 고삐를 죄고 있다. 가계부채 비율의 하향 안정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서울 일부 지역의 빠른 주택가격 상승세가 여타 지역으로 확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한은은 전날 금융안정회의를 열고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가 3,000조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는데,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가계 부동산 대출이 1,309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말과 비교해 3.6% 증가한 수준이다. 상업용 부동산 등 비주택 담보대출이 소폭 감소했으나, 주담대가 더 큰 폭의 증가세를 그린 결과다. 일반기업의 부동산담보대출은 전년 말 대비 11.3% 증가한 694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부동산·건설업종을 중심으로 대출 증가세가 축소(4.4%→1.8%)하면서 익스포저 증가 폭도 1년 전(13.1%)보다 둔화했다.
한은은 부동산 대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여전히 잠재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은은 “향후 금융여건 완화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가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를 자극하고 있다”고 짚으며 “자산 매입을 위한 레버리지 증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부동산 부문으로의 금융 쏠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은은 “부동산금융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경기 부진 시 금융 불안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으로 자금이 집중되면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유관 기관 협력을 통해 추산의 정교화 및 부문별 리스크에 대한 분석의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