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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철강에 이어 자동차·반도체·의약품 관세 부과 가능성 시사 현대차·기아, 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업체 다수 타격 전망 "북미 매출 비중 높아졌는데" 주요 반도체 기업들도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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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인해 국내 산업계에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에 25% 보편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자동차·반도체 등 우리나라의 대미 핵심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시장에서는 관세 부담이 가중될 경우 현대차, 기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각 업계 주요 플레이어들이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자동차·반도체 정조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나 면제 없이 모든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며 관련 포고문에 서명했다. 그는 "우리는 친구와 적들로부터 똑같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며 "우리의 위대한 산업들이 미국에 돌아올 때가 됐다"고 발언했다. 관세 장벽을 통해 미국의 무역 적자를 바로잡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관세 강화 조치는) 이전(집권 1기)과 달리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날 백악관이 공개한 포고문에 따르면,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대상국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회원국, 일본, 영국 등이 포함됐다. 모두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 미국의 수입 물량 제한(쿼터제)의 대가로 '철강 25%·알루미늄 10% 관세' 예외를 인정받은 국가들이다. 한국의 경우 대미 수출 철강 물량을 263만 톤(t)으로 제한하는 대신 무관세 혜택을 받았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4주 동안 매주 회의를 열고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에 대해 들여다보겠다"며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자동차는 매우 중요한 품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 정책을 통해 자국의 자동차·반도체 산업 재건에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국내 車업계 '한숨'
트럼프발(發) 관세 부담이 가중되며 국내 자동차 업계의 한숨은 깊어져 가고 있다. 현재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 수출 시 관세가 면제되고 있으며, 화물차(픽업트럭)에만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자동차 핵심 원자재인 철강·알루미늄에 더해 완성차 자체에도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인 현대차, 기아, 한국GM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추세다.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에서 제조해 수출하는 물량 중 미국으로 향하는 물량의 비중은 45%에 달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 사업장인 한국GM이 지난해 해외에 수출한 물량(47만5,000대) 역시 대부분이 북미 시장으로 향했다.
관세로 인한 위기가 본격화하자 업계는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등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지은 새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연간 생산량을 기존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끌어올리고,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을 동원해 현지 생산 비중을 늘려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미국 본사의 '수출 기지' 성격을 띠는 한국GM의 경우 위기를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자동차 관세 장벽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GM이 국내에서 생산을 지속할 유인을 잃으며 사업 철수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한국GM은 앞서 군산 공장 철수를 단행하는 등 국내 시장 철수를 지속적으로 고려해 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관세를 25%까지 올릴 경우, 한국GM은 더 이상 국내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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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도 위기 직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반도체 시장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북미 매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1~3분기 북미 매출은 27조3,058억원으로 1년 전(9조7,357억원) 대비 3배가량 급증했다. 전체 매출 중 북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동기(45.4%) 대비 13.4%포인트(p) 상승한 58.8%에 달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미주 매출(가전·반도체 포함)은 84조6,771억원으로 전년 동기(68조2,784억원)보다 24%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미주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7.6%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16.8%), 유럽(16.6%), 중국(15.4%)보다 월등히 높았다.
향후 이들 기업은 현지 생산 기지를 통해 관세 부담 경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 달러(약 24조7,000억 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약 370억 달러(약 53조원)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 달러(약 5조6,12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현지 생산 시설이 관세 리스크 회피를 위한 '활로'로 부상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장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관세를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은 반도체 제조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관세 부과는 미국 기업들에도 불이익"이라며 "결국 (반도체 관세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와 대중(對中) 수출 제한 협조를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후로도)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해 초강수를 둘 가능성이 있다"며"단기적으로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