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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공공기관, 지난해 줄줄이 채용 규모 축소 일자리 미스매치 심화하며 '쉬었음' 청년 급증 "일자리 가릴 때가 아니다" 고령층 경제 활동은 오히려 '역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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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용 시장에 역대급 '한파'가 불어닥쳤다. 대형 민간사업체와 공공기관이 나란히 채용 규모를 축소하며 양질의 일자리가 급감한 결과다. 다만 실제 고용 상황에는 연령대별 '온도 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층 사이에서 구직 활동을 단념하고 고용 시장을 이탈한 '쉬었음' 인구가 급증하는 반면, 은퇴 이후 재취업 기회를 찾는 고령층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치솟는 추세다.
얼어붙은 고용 시장
1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대형 사업체의 월평균 취업자는 전년 대비 5만8,000명 증가한 314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2018년(5만 명) 이후 6년 만에 가장 작은 증가폭이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취업자 증가폭은 3년째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공공기관 신규 채용도 크게 줄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339개 공공기관이 채용한 일반정규직(이하 무기계약직·임원 제외)은 1만9,920명에 그쳤다. 이는 정부의 지난해 채용 목표치(2만4,000명)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공공기관의 신규 일반정규직 채용은 2019년 4만116명에서 2020년 2만9,480명으로 떨어진 뒤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구직자 1명에게 돌아가는 일자리 수를 뜻하는 구인배수(구인인원에서 구직인원을 나눈 값)는 올해 1월 0.28까지 미끄러졌다. 이는 1999년 1월 0.23 이후 최저치이자,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0.29)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구인배수는 2023년에는 월평균 0.6, 지난해에는 월평균 0.5 선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12월 0.4까지 하락했다.
![](/sites/default/files/styles/large/public/image/2025/02/NEET_PE_20250211.jpg.webp?itok=54EqLioZ)
청년층, 고용 시장 떠난다
고용 시장 전반이 얼어붙으며 아예 구직을 단념한 '쉬었음' 인구 역시 급증하는 추세다. 쉬었음 인구는 실업자나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인구에서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중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으나, 막연히 쉬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다.
쉬었음 인구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지는 연령대는 청년층이다. 지난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그냥 쉰다"고 답한 청년의 수는 2023년 대비 2만1,000명 늘어난 42만1,000명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2020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미래 노동 시장의 주역이 돼야 할 청년들이 노동 시장에서 속속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구직 포기 청년이 늘어나는 핵심 원인으로는 '일자리 미스매치'가 꼽힌다.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선발 인원을 줄이며 취업 문턱이 높아지자,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 청년들이 속속 구직을 포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쉬는(자발적 쉬었음) 인구의 비중은 핵심 연령층(35~39살, 20.1%)보다 청년층(32.4%)에서 높았으며, 비자발적 사유로 쉬는 청년층 인구도 주로 300인 미만 중소기업, 대면 서비스업 등에 종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층 고용 시장은 '활황'
청년층의 고용 시장 이탈이 가속화하는 반면, 고령층의 고용 시장 내 경쟁은 향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954만 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은퇴 연령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평균 퇴직 연령이 50대 초반에 머무는 가운데 100세 시대가 도래하며 재취업 수요가 폭증한 상황"이라며 "청년층의 구직 심리가 얼어붙은 것과는 달리 고령자들 사이에서는 일자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재취업 기회를 찾는 고령자들이 늘며 고령층 고용률 역시 빠르게 치솟고 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령자 고용 동향에 따르면, 2024년 고령자 경제활동 참가율은 71.6%로 전년(71.4%) 대비 0.2%포인트(p) 상승했다. 이는 통계 대상을 55~64세로 설정하기 시작한 지난 1989년(60.7%) 이래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15~64세 인구의 고용률은 69.5% 수준이었으며, 청년층 고용률은 46.1%에 그쳤다.
청년층과 고령층의 고용 상황이 뚜렷이 상반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온도 차가 일자리에 대한 연령대별 '눈높이'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재 국내 고용 시장에는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이라며 "일자리의 '질'에 크게 개의치 않고 당장의 일거리가 간절한 고령층은 비교적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있지만, 임금 수준과 업무 환경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청년층은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예 고용 시장을 이탈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