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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9,300억원→1조4,000억원 요구
조합 “증액분 지급 근거 부족” 거부
줄 잇는 소송, 시공사 지위 박탈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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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를 불과 넉 달 앞둔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가 재건축 공사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공사인 GS건설이 4,900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용승인 등 향후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는 탓이다. 총 3,307가구 규모의 메이플자이 입주가 지연될 경우, 인근 임대차 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조합과 GS건설은 서울시에 중재를 요청하고, 한국부동산원에 추가 공사비 검증을 요청한 상태다.
‘만일의 경우’ 대비한 조합, 현금 마련 돌입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지난해 12월 총 4,86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메이플자이 재건축 조합 측에 요청했다. 공사비 추가 명목은 설계변경·특화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2,288억원, 사업계획·기간 변경 및 건설환경 변화(금융비용 등)에 따른 공사비 2,571억원 등이다. 착공 전 물가상승분 310억원과 건설환경 변화에 따른 공사비 반영분 967억원, 사업기간 증가에 따른 금융비용분 185억원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GS건설은 이 가운데 금융비용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2,571억원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에 공사대금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증액분에 대해 조합이 ‘공동사업시행 협약서’에 반하거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GS건설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설계변경 및 특화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2,288억원에 대해서는 조합 측이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요청했다. GS건설은 지난해 10월 같은 명목으로 1,234억원을 요청했지만, 불과 두 달 후 세부내역을 제출하면서 이를 2,288억원으로 증액했다.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 측에서 요청한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조합은 상가 통매각을 추진하고 나섰다. 향후 공사비 추가 부담 의무에 따라 자칫 입주 일정이 변동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현금을 확보해 두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합은 지난달 6일 근린생활시설(상가) 일반분양분 일괄매각 공고를 냈다. 상가 총 213호 가운데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 물량 59호를 한꺼번에 매각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들 점포는 보름가량 진행된 1차 매각에서 유찰돼 현재 2차 입찰을 추진 중이다.
빛바랜 속도전, 입주 일정 준수도 불투명
잠원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올림픽대로, 반포대교 등 주요 인프라를 품은 메이플자이 재건축은 지하 4층~지상 35층 총 29개동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임에도 사업 초기 빠른 속도전으로 눈길을 끌었다. 통상 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부터 착공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게 소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해당 단지는 2016년 조합 설립부터 사업시행계획인가까지 불과 1년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7년 유예를 마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등 굵직한 과제도 존재했으나, 2,9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은 이 같은 주요 사안에서 매번 큰 의견 충돌 없이 뜻을 모으면서 “재건축 사업의 가장 큰 적인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21년 10월에는 기존 단지를 철거하며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2023년 GS건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면서 빠른 사업 진행에 제동이 걸렸다. 2017년 사업시행계획인가 직후 시공사로 선정된 GS건설은 공사비 9,300억원으로 조합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원자잿값과 인건비 폭등, 설계 변경 등으로 약 5,000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합 측에 공사비를 1조4,000억원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은 계약 당시 도급 계약 체결부터 착공 전까지의 물가 상승률만 공사비 증액분에 반영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GS건설의 공사비 증액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공사 중단 우려에 따른 조합원들의 불안이 커지자, 종전 계약 금액에서 1,980억원(21%) 오른 1조1,332억원의 공사비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남은 공사비 증액분 3,180억원에 대해서는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을 통해 확정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사비 검증이란 시공사가 부당하게 공사비 인상을 못하도록 공공기관인 부동산원이 적정성을 검토하는 제도다. 지난해 9월 부동산원은 설계 변경으로 인한 추가 공사비 3,180억원 중 2,186억원이 적당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 금액 조정 부분과 금융비용 등 1,800억원에 대해서는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은 상태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초구 일대 임대차 시장에도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잠원동 한 공인중개사는 “통상 한 집이 이사를 하면, 서너 가구가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3천 가구가 넘는 메이플자이의 입주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이 근처 1만 가구가 영향권에 놓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sites/default/files/styles/large/public/image/2025/02/increase_cost_PE_20250210.jpg.webp?itok=AJipidcI)
건설공사비지수 7년 만에 42% 급등
공사비를 둘러싼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은 비단 메이플자이만의 일이 아니다. 철근과 콘크리트 등 핵심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인건비마저 급등하면서 건설사들의 부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강남권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디에이치클래스트(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해당 단지는 시공사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를 1조4,000억원가량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대건설은 기존 546만원 수준이던 3.3㎡당 공사비를 829만원으로 높여 줄 것을 조합 측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기록적인 물가 상승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하면 지난해 연평균 건설공사비지수는 151.94로 2017년(107.05) 대비 약 42% 뛰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재료, 장비, 노무 등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다. 연평균 건설공사비지수 상승률은 2017년 5%를 기록한 뒤 안정세를 보였지만, 2021년과 2022년 각각 11% 수준으로 급등했다.
각각 협상단을 구성한 현대건설과 조합은 이른 시일 내 공사비 협의에 돌입할 계획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사비 변동의 가장 큰 원인은 물가 인상과 설계변경”이라고 짚으며 “근래 인플레이션이 일시에 터지면서 물가가 통상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상승했고, 착공 전 도면 역시 인허가를 진행 중 변경됐다”고 공사비 증액 요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주요 정비사업지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시공사를 변경하는 단지까지 등장했다. 래미안트리니원(반포주공1단지 3주구)이 대표적 사례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해당 단지 시공사 지위를 일방적으로 박탈했다며 조합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18년 7월 우선협상대상자(우협)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은 이후 1년 넘게 특화설계와 공사비 등에서 조합과 뜻을 모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조합 내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우협 지위 박탈 추진 움직임이 일었고, 결국 2019년 12월 시공사 선정 취소 건을 가결했다.
현대산업개발은 해당 재건축 사업을 시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행이익) 411억원을 배상해 달라고 소를 제기했다. 이후 1심 재판부가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조합이 164억4,062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양측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소송은 장기전에 들어섰다. 조합 측은 “시공사 선정 후 본계약 협상 전 계약이 파기된 경우”라고 짚으며 “우협 선정을 법률관계 성립으로 볼 수 있는지, 성립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정비업계는 이번 소송전의 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빈번해진 만큼 법원의 판단이 향후 유사한 사안에서 기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변선보 법무법인 지음 변호사는 “최근 시공사와 재건축 조합 간 소송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건설사 입장에선 시공사 선정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만큼 계약 해지를 둘러싼 책임 소재와 손해배상 범위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