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 Home
  • 딥폴리시
  • [딥폴리시] 공공 조달 재협상 허용, ‘저가 낙찰 후 인상’ 구조 고착

[딥폴리시] 공공 조달 재협상 허용, ‘저가 낙찰 후 인상’ 구조 고착

Picture

Member for

3 months 2 weeks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재협상 허용으로 입찰가는 낮아지고 지출은 증가
경쟁 약화와 사후 검증 의존으로 제도적 허점 노출
지수 연동 조정과 계약 변경 공개를 통한 공정 경쟁 확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 정부는 매년 공공 조달에 약 2조 유로(약 2,900조원)를 지출한다. 이는 GDP의 14%에 달하는 규모로, 도로와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부터 각종 물품과 서비스 구매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움직이는 시장에서는 제도의 작은 변화가 전체 지출 구조를 흔들 수 있다.

최근 연구는 그 영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낙찰 이후 계약 금액을 재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면 입찰가는 낮아진다. 하지만 계약 변경 건수는 급증하고, 총지출은 오히려 늘어난다. 평균적으로 최종 계약 금액은 변하지 않지만, 일부 대형 사업에서 비용이 불어나면서 전체 재정 부담이 커진다. 겉으로는 절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사후 조정으로 비용이 다시 채워지는 구조다. 결국 ‘낮은 가격으로 낙찰받은 뒤 나중에 조정하는 방식’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쟁이 아니라 제도가 허용한 왜곡된 순환일 뿐이다.

사진=ChatGPT

경쟁 약화와 제도의 허점

낙찰 후 가격 변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업체는 애초부터 낮은 가격을 써내고 이후 인상을 계획한다. 실제로 재협상이 허용되자 입찰가는 내려갔지만, 계약 변경과 지출은 오히려 늘었다. 손쉬운 수정은 가치를 만들지 못한 채 협상과 행정 부담만 확대시킨다. 특히 대규모·장기 계약의 경우 단일 사업의 충격만으로도 전체 예산 집행이 왜곡된다.

이 같은 경향은 경쟁 약화와 맞물리며 더 심화된다. 유럽연합(EU)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단독 응찰은 늘고, 수의계약과 국경 간 경쟁은 줄었다. 경쟁자가 줄어들수록 ‘저가 낙찰 후 인상’ 전략은 더 안전해진다. 시장에서 가격 검증 기능이 입찰 단계가 아니라 사후로 옮겨지는 셈이다.

유럽 밖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2024~25년 미국에서는 이미 집행된 8억7,000만 달러(약 11조9,000억원) 규모 계약이 감사 과정에서 가격 검증상의 문제를 드러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공공 건축물 보수 공사 입찰에서 담합 의혹이 제기돼 규제 당국이 조사를 시작했다. 두 사례 모두 부패 사건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후 절차에서야 가격의 적정성이 검증된다는 점에서, 제도의 구조적 허점을 보여준다.

위험을 사전에 반영하는 계약 설계

재협상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은 원자재 가격 변동성을 근거로 든다. 실제로 2020년 이후 건설 자재 가격은 40% 가까이 상승했고, 철강 가격은 관세와 에너지 비용으로 2024~25년까지 불안정했다. 그러나 변동성이 무제한 계약 변경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대응은 계약 시점부터 공식 지수에 연동한 조정 장치를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설 계약이라면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의 건설비 지수나 자재 생산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가격이 오를 때뿐 아니라 내릴 때도 반영하도록 상·하한선을 명확히 설정하면, 당사자 모두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위험을 분담할 수 있다. 이 경우 입찰 평가는 단순한 최저가가 아니라 ‘지수 경로를 고려한 현실적 가격’을 기준으로 진행된다.

계약 수정의 시점도 중요하다. 체코는 2016년 법 개정을 통해 재협상 요건을 크게 완화했는데, 이때 문제가 된 것은 소급 적용 조항이었다. 개정 이전 3년간 체결된 계약까지 새 규정을 적용하면서, 원래는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높은 가격을 받은 계약들이 다시 협상 대상이 됐다. 결국 이미 높게 책정된 금액이 추가 인상으로 이어져 공공 지출이 많이 늘어났다. 이 사례는 소급 규정 변경이 얼마나 큰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향후 계약에만 적용해야 한다.

또한 저가 입찰의 위험은 낮은 가격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불확실성이다. 관세 인상, 자재 가격 하락, 인력난 같은 시나리오를 적용한 비용 현실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아울러 공급업체별 계약 변경 내역을 공개 표준(OCDS)에 따라 투명하게 공개해야 정직한 경쟁이 가능하다.

경쟁 촉진 장치 강화

경쟁은 가격 왜곡을 막는 가장 확실한 장치다. 단독 입찰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대형 계약을 분할해 여러 업체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일정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또한 지나치게 낮은 가격 제안을 걸러낼 수 있는 심사 절차가 필요하다.

교통, 장비 교체, 청소 등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수요는 장기 계약안에서도 주기적으로 추가 경쟁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업체들이 자동으로 비용을 인상하는 관행을 차단할 수 있다. 아울러 계약 변경을 과도하게 반복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입찰 자격을 제한하거나 추가 보증을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제재가 아니라, ‘낮은 가격으로 따낸 뒤 나중에 인상하는 전략’을 덜 매력적으로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유도하는 장치다.

입찰의 본질을 회복해야

재협상이 허용되는 순간 입찰은 형식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계약 초기에 반영하는 것이 해법이다. 지수 연동식 조정, 소급 적용 금지, 명확한 오류 수정 규칙, 비용 현실성 검증, 계약 변경 내역 공개가 핵심이다. 무엇보다 입찰 단계에서 허울뿐인 절감 효과에 기대지 않고, 성실한 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조달의 목표는 경직성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이다.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행정적 소모를 줄이고, 제한된 재원을 실질적 가치 창출에 투입할 수 있다. 조달 개혁은 협상을 줄이는 과정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경쟁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id Low, Renegotiate Later: Why Education Procurement Must Break the Lowball Trap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3 months 2 weeks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