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믿고 손 잡나" 묘연한 티메프 피해자 구제 방안, 신뢰 잃은 티몬 재오픈 '난항'
입력
수정
위메프 피해자, 회생폐지로 구제 사실상 불가능해져 티몬 피해자들도 낮은 채권 변제율에 '분노' 재오픈 앞둔 티몬, 여론 악화로 결제 시스템 구축 난항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피해자들의 구제 방안이 묘연해졌다. 위메프가 회생폐지로 사실상 파산 절차를 밟게 된 가운데, 오아시스 품에 안긴 티몬의 채권 변제율마저 1%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확정됐기 때문이다. 부실한 피해 보상으로 인해 티메프를 둘러싼 시장 여론이 악화하자, 겨우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티몬의 재기에도 속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빚더미 올라앉은 위메프 피해자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은 유의미한 구제를 받지 못한 채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티메프 사태는 큐텐그룹 산하의 이커머스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유용하다 일으킨 대규모 미정산 사고에서 출발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들이 입점 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대금은 1조2,790억원, 피해 업체 수는 4만8,000곳에 달한다. 이후 두 기업은 나란히 기업회생절차에 착수했다.
문제는 기업회생 과정에서 위메프가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서울회생법원은 위메프의 회생폐지 결정을 내렸고, 위메프는 누리집에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를 하는 등 사실상 파산 절차에 접어들었다. 법원 결정으로 기업은 정리됐지만, 피해자들은 막대한 빚을 그대로 떠안게 됐다. 판매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채 거래처에 지급해야 할 대금이나 금융기관 대출금 등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선정산 대출' 서비스로 인해 빚을 지게 된 판매자도 여럿이다. 티메프는 입점 판매자에게 대금을 정산해 줄 때 2∼3개월의 시차를 뒀고, 이 때문에 많은 판매자가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의 선정산 대출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티몬·위메프로부터 받을 판매 대금을 담보로 은행이 먼저 돈을 빌려주고, 이후 대금을 정산받으면 이들이 은행에 이자를 더해 갚는 방식이다.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위메프 판매자들은 선정산 대출을 갚을 방도 없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셈이다.
티몬 변제율도 0.75% 그쳐
지난 6월 신선식품 기업 오아시스가 인수한 티몬의 피해자들 역시 상황은 좋지 못하다. 티몬의 회생계획안에는 티메프 모회사였던 큐텐그룹의 구영배 대표를 비롯한 책임자들이 큐텐 청산 등을 통해 1,000억원대 손해를 배상하는 변제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구 대표는 직접 지난해 7월 사재 출연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구 대표 등 큐텐과 티몬의 핵심 관계자들은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더 이상 사재 출연을 통한 피해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회생법원은 티몬의 채권 변제율을 0.75%로 정했다. 티몬의 미정산 채권은 약 7,456억원인데, 변제 금액은 56억원가량에 그치는 셈이다. 일반 판매자들은 이마저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한다. 선정산 대출 계약 과정에서 법인 대표와 티몬이 연대보증(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대신 갚을 사람을 지정)으로 묶여, 피해자들은 후순위로 밀리고 은행이 먼저 티몬으로부터 변제를 받기 때문이다.
이에 티몬 피해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월 티몬의 회생계획안이 강제 인가되며 오아시스의 인수가 확정됐을 당시 신정권 티메프 사태 피해자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현재의 약 0.75% 변제율은 피해 금액의 일주일 치 대출이자만도 못한 수준"이라며 "이번 회생 결정으로 2차, 3차 연쇄 도산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실질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연쇄 도산 등의 부작용을 막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드업계, 티몬 PG사 연동 거부
티몬의 서비스 재개시 역시 차일피일 미뤄지는 중이다. 인수가 확정된 이후 오아시스는 티몬의 재오픈 준비에 박차를 가해 왔다. 공식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리오프닝 티저 영상을 잇달아 공개하고, 티몬의 서비스 재개일을 8월 11일로 확정 짓기도 했다. 하지만 오아시스 측은 8월 11일을 닷새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서비스 개시 계획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업회생절차가 최종적으로 종결된 이후에 서비스를 오픈하겠다는 설명이었다.
문제는 티몬이 8월 22일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좀처럼 서비스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9월 10일 재오픈 예정이었던 티몬은 이달 1일 재차 일정을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미정산 사태와 미흡한 피해 보상으로 인해 소비자와 일부 파트너사 사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카드사들이 부담을 느껴 PG사 연동을 거부한 것이다. 티몬은 결제사 확보가 완료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오픈 일정을 정하지 않기로 했다.
티몬의 재도약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법원의 회생계획안 강제 인가가 '옳은 선택'이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장 전문가는 "티몬은 이미 소비자 신뢰를 잃고 한 차례 무너져버린 브랜드"라며 "티몬의 인수자로 나선 오아시스가 현 상황을 풀어낼 만한 역량을 갖춘 기업인지 충분히 따져 봤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법원이 현실적인 시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회생계획안을 인가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