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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협력과 투쟁’의 베트남 외교술, 미중 경쟁 속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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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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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협력과 투쟁 병행한 유연한 균형 외교
미중 대립 심화로 좁아진 외교 공간
전통 외교 전략의 전환점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협력과 투쟁(Cooperation and Struggle)’이라는 원칙에 따라 운영해 왔다. 공동의 이익이 있는 분야에서는 협력을 추구하되, 자국의 주권과 이익이 침해될 때 분명히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중국 중심의 위계질서 속에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오랜 현실 감각의 산물이다. 과거 조공 체제에서도 베트남은 겉으로는 예를 갖췄지만, 실질적 보상을 요구하며 자율적 공간을 확보했고, 오늘날에도 이를 전략 환경에 맞게 조정하며 유지하고 있다.

사진=ChatGPT

좁아지는 외교 공간, 도전에 직면한 전통 전략

미중 관계는 단순 경쟁을 넘어 구조적 대립 구도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과 고율 관세를 통해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경제·안보 양면에서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이 같은 질서 재편 속에서 ‘협력과 투쟁’ 전략 역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 전략이 지속되기 위해선 양국 모두 베트남에 일방적 부담을 전가하지 않고, 베트남 역시 양측에 전략적 유용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베트남을 전략 거점으로 삼고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선, 외교적 균형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무역과 자본의 이중 의존 구조

베트남의 균형 전략은 무역과 자본 흐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4년 대외무역 규모는 7,860억 달러(1,061조원)로 GDP의 183%에 달할 만큼, 베트남은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수출의 약 30%는 미국으로 향하고, 대미 무역흑자도 1,366억 달러(184조원)에 이른다. 반면, 수입 측에서는 중국 비중이 압도적이다. 2023년 수입액은 1,100억 달러(148조원)를 넘었고, 2025년 5월 기준 월간 수입액은 사상 최대치인 162억 달러( 22조원)를 기록했다. 베트남 제조업 원자재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다.

미국 수출과 중국 수입에 대한 베트남의 무역 의존도(2024)
주: 미국 수출(좌측)과 중국 수입(우측)의 금액(단위: 십억 달러) 및 베트남 명목 GDP(4,763억 달러) 대비 비중(%)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미국의 고율 관세는 수출을 위협하고, 중국 해경의 남중국해 압박은 수입과 해상 안보를 동시에 흔든다. 한쪽과의 관계만 틀어져도 베트남 경제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자본 흐름 속 균형 전략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에서도 베트남의 균형 전략은 뚜렷하다. 2024년 외국인직접투자 집행액은 253억5,000만 달러(34조8천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중국의 투자액은 전년 대비 38% 늘었다.

베트남의 주요 아시아 3국의 투자 규모 및 비중(2024)
주: 싱가포르, 한국, 중국의 등록 자본(단위: 십억 달러)과 비중(%)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중국 기업이 같은 산업단지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부 지역에는 미국의 폭스콘 공장과 중국계 가전 조립 설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물류망이 특정 국가에 의해 독점되지 않도록, 입주 기업 간 인프라 공유와 운영 조건의 균형을 사전에 조율하고 있다.

생산 공정 또한 다국적이다. 중국산 원재료가 베트남에 들어오고, 한국산 부품이 조립되며, 미국 기관이 품질을 인증한다. 하나의 제품이 여러 국가를 거쳐 ‘베트남산’으로 완성되는 구조 속에서, 베트남은 이익을 분산·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계산된 해상 전략과 방위 투자

남중국해에서도 베트남은 정면충돌보다 ‘비용 증가 전략’을 택하고 있다. 중국 해안경비대는 매주 베트남의 해양 탐사선과 시추선에 접근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베트남의 해상 에너지 개발 작업이 반복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2024년 10월에는 파라셀 군도 인근에서 중국 측이 베트남 어민을 폭행하고 장비를 압수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베트남 국가석유가스그룹(페트로베트남)에 따르면, 중국의 해양 방해로 뱅가드 뱅크 해역에서 시추 작업이 중단될 경우, 일주일마다 약 1,200만 달러(165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베트남은 해군력 경쟁보다 방어 효율이 높은 무기체계에 집중하며 국방예산을 점진적으로 늘리고 있다. 2024년 국방예산은 78억 달러( 10조 7천억원)이며, 2028년에는 100억 달러(약 13조 7천억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베트남이 선택한 전략은 군사 대응보다, 행동 비용을 높이는 방식으로 긴장을 관리하는 접근이다. 바다에서도 실리와 효율을 우선하는 균형 감각이 작동하고 있다.

협상 방식에 따른 전략 조율

베트남이 강대국 사이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중간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손익 계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오랜 문명적 감각이 작동한다. 중국과는 유교적 의례에 기반한 예측 가능한 대화를 이어가되, 원칙과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미국과는 속도 조절을 병행한다. 예를 들어, 중국이 스파이 의혹을 제기하면 차관급 실무 협의체로 체면 손상을 피하고, 미국의 부품 원산지 요구에는 일부 통계만 공개해 의회의 통계 논쟁으로 방향을 바꾼다.

정부의 대응 전략

하지만 아무리 언어와 형식을 조율하더라도, 양측의 압박이 동시에 강화될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외교적 완급 조절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이 이미 베트남 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

베트남 기획투자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46%의 고율 관세를 시행하고 중국이 3개월간의 어업 금지 조치를 충돌 방식으로 강행할 경우, 베트남의 GDP 성장률은 첫해에 2.7%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성장률의 3분의 1이 사라지는 충격이며, 도시 외곽의 이주 노동자 해고와 중부 산업단지의 가동 중단, 지방정부 재정 악화를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에 대비해 ‘2030 헤지 통합 계획’을 수립했다. 고위험 품목에 블록체인 기반의 원산지 증명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정밀하게 입증하고, 하이퐁 조선소와 박닌 전자산업단지를 연결해 국방 투자를 민간 공급망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또 인도네시아, 필리핀과의 공동 해양 에너지 운영 구상을 통해, 중국의 간섭을 다자 협력 이슈로 전환하는 시도도 병행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의 지속 가능성

이처럼 실무적 대응이 뒷받침되더라도, 전략적 모호성이 계속 작동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베트남은 ‘4무 정책(무동맹, 무군사기지, 무진영, 무선제)’을 통해 미중 어느 쪽과도 동맹을 맺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외교는 다층적이다. 미국과는 안보 협력을 넓히면서도, 중국과는 고위급 정당 간 소통을 통해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모호성이 양국 모두에 수용될 때만 지속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모두 베트남의 외교적 입장을 유연한 중립이 아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인다면, 베트남은 더 이상 균형 외교의 공간이 아닌 외교적 압박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전통 외교 전략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

‘협력과 투쟁’은 과거의 반복이 아닌, 실리를 극대화하면서 위협에 대응해온 외교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질서 자체가 바뀌고 있다. 베트남은 과거처럼 균형자가 아니라, 양쪽에 실익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결국 ‘협력과 투쟁’이라는 고전 전략을 어떻게 재정의하느냐가 향후 동남아 외교의 향방을 가를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애셔 엘리스(Asher Ellis)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 출신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Vietnam’s careful US-China balancing act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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