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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즉각 보복관세"와 달리 英·獨·멕시코 등은 설득·존중 佛,'유럽 군사 자립' 맹렬한 행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이 격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주요국 리더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트럼프식 외교에 대처하고 있다. EU(유럽연합)와 캐나다는 즉각 보복에 나선 반면 멕시코는 보복 조치 대신 협상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특히 영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매드 맨(mad man)’ 전략에 대응하는 냉철한 리더십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英 스타머, 美·EU 중재 역할
16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약 30개국 정상들과 영상회의를 한 뒤 "우리는 잠재적 합의를 지원하기 위해 실질적인 작업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며 "이제는 작전 단계(operational phase)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참여국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추가 제재 등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최대치로 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외교 전문가들은 EU 탈퇴(브렉시트) 이후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미약했던 영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일으키는 글로벌 지정학의 급변동 국면에서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부활시키고 있고 평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스타머 총리가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스타머 총리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에 비견되는 능숙하고 결의에 찬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며 그를 '윈스턴 스타머'라고 칭하는 등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워싱턴에서 찰스 국왕의 편지로 트럼프 대통령을 매료시키며 영국을 관세 폭격의 과녁에서 벗어나게 했고, 런던에서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계획을 세워 유럽 동료들의 규합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딱딱하고 내성적인 듯한 그의 성향이 국내 정치에서는 단점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외교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타머 총리의 이 같은 성격이 중재자 역할에서 강점으로 작용해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엇갈린 관계를 풀며 임시 휴전 제안을 이끌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유럽을 상대로 한 스타머 총리의 노련한 리더십은 각국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달 2일 스타머 총리는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협력할 의지가 있는 유럽 및 영연방 국가들을 규합해 런던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의지의 연합'을 발족하기도 했다.
또한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부과한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보복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EU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성사시키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설득을 통해 통상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스타머 총리의 지지율은 실용주의 노선과 유럽 내 안보 협력 강화를 추진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30%(8일 기준)로 2월 말보다 7%포인트 올랐다.

강경·협상·신중 대응 방식 주목
영국 외 다른 주요국 리더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의 기술'에 맞선 '협상의 기술'로 대응하고 있다. 독일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EU 자강론을 내세우는 등 트럼프 대통령에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메르츠 대표는 대규모 국방비 지출을 위해 기본법(헌법)의 엄격한 ‘부채 브레이크’의 예외를 인정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겠다며 협상 수단으로 삼고 있는 데 대응해 ‘강한 독일’을 만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미 지역에서도 리더들의 전략적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며 국민적 지지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상대 진영에서 ‘얼음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일 만큼 정치적 약점으로 여겨졌던 냉철한 스타일이 트럼프 대통령 대처에서는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신임 총리는 경제 전문가 경력을 내세우며 경제 위기 속에서 안정적인 정책 운영을 예고해 86%의 득표율로 당 대표 및 캐나다 차기 총리로 뽑혔다. 14일 신임 총리로 취임하는 카니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만날 의향이 있다며 손을 내미는 실용주의 면모도 보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존재감 부각
유로존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때 국내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들어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치며 유럽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최근 그는 유럽 각국 지도자들을 파리로 초청해 회의를 주재하는 한편, 워싱턴을 방문한 뒤 런던으로 향하는 등 분주한 외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유럽이 군사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주장의 선봉에 서게 됐다는 평가다.
마크롱 대통령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발언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NATO를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마크롱의 주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외교 및 군사적 대응도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 뮌헨 안보회의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유럽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즉각 대응하며 유럽 지도자들을 파리로 소집해 논의를 이끌었다. 그는 또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그 결과를 EU 지도자들에게 직접 브리핑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 온 유럽의 방위력 강화도 현실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덴마크도 파병 의사를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1일 유럽 30개국의 군 지도자들을 파리로 초청해 추가적인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또한 그는 프랑스의 핵무기를 유럽 국가들과 공유하는 방안도 논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그동안 독립적인 핵전력을 유지해 왔지만, 이번 논의는 프랑스를 유럽의 지도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