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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美가 가자지구 점령할 것" 팔레스타인 주민 220만 명 이주 계획도 밝혀 이란에 대해서는 '원유수출 제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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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황폐화된 가자지구에서 220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주변국으로 영구 이주시키고 미국이 가자지구 땅을 접수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탄 선언’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동 분쟁을 해결해 노벨평화상을 받겠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미국 대통령이 특정 민족을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계획적으로 제거하는 ‘인종 청소’를 사실상 선언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take over)’하고 장기적으로 ‘소유(own)’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국제법상 불법 점령에 해당할 수 있는 데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동 갈등에 뛰어들며 더 큰 분쟁을 열어 젖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죽음 반복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겐 새 터전 필요해"
4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접수할 것이며, 그곳에서 할 일을 하겠다"며 "우리가 소유하면서 그 곳에 남아 있는 위험한 불발탄과 기타 무기들을 제거할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괴된 건물들을 정리한 뒤 해당 지역을 경제적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가자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예전과 똑같은 사람들이 가자지구의 재건과 점령을 책임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미국 행정부가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3~5년 계획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집트와 요르단에 가자 주민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해 왔지만, 두 나라는 이를 강하게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두 나라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도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를 재건하기보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새로운 영구적인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적절한 땅을 찾거나 여러 개의 땅을 확보하고, 그곳에 충분한 자금으로 정말 멋진 주거지를 건설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을 것”이라며 “오랜 세월 가자에서는 오직 죽음만이 반복됐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총격, 칼부림, 폭격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을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중동 국가들, 트럼프 발언에 강하게 반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이집트, 요르단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아랍연맹 등 중동 주요 국가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사실상 소수 집단을 말살하는 '인종 청소'가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가자지구 문제로 발발한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된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의 강제 이주를 반대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온전히 뒤집은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과 '소유'까지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현장의 모든 위험한 불발탄과 다른 무기의 해체를 책임지고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파괴된 건물을 철거하고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주거를 무한정으로 공급하는 경제 발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가자지구에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재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도, 점령과 소유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동 내 반미 진영의 거부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지역이나 국가에서 특정 집단을 정책적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중동의 리비에라'는 가자지구를 통해 이권을 챙기겠다는 구상이다. 리비에라는 지중해안 일대의 휴양지를 뜻하는데, 미국이 이를 통해 이권을 챙긴다면 국제법상 '인도에 반한 죄'의 가해자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휴전 협의를 진행 중인 하마스 측에서도 암초를 만났다. 하마스 정치국의 사미 아부 주흐리 위원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것들을 역내에 혼란과 긴장을 조성하기 위한 처방전으로 여긴다"며 "가자지구 사람들은 그런 계획이 통과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주민들의 자치권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꼬집으며 "지정학적 판도라의 상자를 사실상 다시 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 국가들의 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을 중동 지역 분쟁에 더 깊이 끌어들일 방안"이라고 짚었다.
이란에 대해서는 '최대 경제 압박', '강력 제재' 선언
중동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칼날은 이란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한 이란과의 핵 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 파기하고 고강도 제재를 복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시작과 함께 대이란 압박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재무부에 이란에 대한 최대한의 경제 제재를 부과하고 기존 제재 위반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각서에는 미국 재무부가 이란에 대한 ‘최대 경제 압박’을 가하고,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미 재무부와 국무부가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란의 원유 수출액은 2023년 530억 달러, 2022년 54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4년에는 2018년 이후 최고 수준의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원유 수출 차단을 원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란의 핵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이다. 그는 이란에 대한 '말살'까지 언급했다. 다만 이란과의 협상 여지는 남겨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협상할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우리는 이란과 협상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크게 판을 흔들어 상대국을 충격에 빠트린 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충격과 공포' 전술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