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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구체적 수치 들어 트럼프 억지 주장 반박 日 집권 자민당, 지지율 고려하면 수입 확대 어려워 "관세 30~35% 매기겠다" 압박 수위 높이는 美

일본이 관세를 무기 삼아 '쌀 수입'을 요구하는 미국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쏟아낸 비판을 정면에서 반박, 미국의 억지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日, 트럼프 향해 맞불 놨다
2일(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일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은 이날 도쿄 농림수산성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미국의 쌀 수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전면 반박했다. 그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로부터의 쌀 수입이 1년 전보다 120배 증가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에 대한 명백한 오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쌀 수입량은 지난 5월 처음으로 1만 톤(t)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 수입량 대비 126배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고이즈미 농림상은 일본이 미국산 쌀에 70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주장에 대해서도 "일본의 쌀 관세는 700%에 미치지 못한다"고 명확히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협상에서 "매우 강경하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 대신이 "일본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응수했다. 고이즈미 농림상도 "협상에는 다양한 전술이나 전략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회담에서 아카자와의 노력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아오키 가즈히코 관방부 부장관 역시 정부가 트럼프의 발언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미국 정부 관리들의 모든 발언에 대해 논평하지는 않는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어 "우리는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양자 회담을 진전시키려 하며, 일본과 미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쌀 수입 확대 가능성 낮은 이유
시장에서는 향후 일본이 쌀 시장을 개방할 가능성은 사실상 낮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한 시장 관계자는 "집권 자민당은 현재 쌀값 정책을 통해 겨우 지지 기반을 다진 상황"이라며 "자민당의 중요한 지지 기반 중 하나인 농민들을 고려하면 쌀 수입을 선뜻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이 이달 20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 여당 공명당과 함께 과반 의석수를 유지하지 못하면 퇴진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일본의 쌀값은 작년 여름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무렵 2,000엔(약1만8,900원)대 초반 수준이었던 쌀 5㎏ 소매가는 지난 5월 12∼18일(해당 기간 평균치) 4,285엔(약 4만원)까지 치솟았다. 쌀값 상승 요인으로는 △작황 부진 △장기간 지속된 쌀 생산 억제 정책 △지난해 8월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 발령에 따른 사재기 △복잡하게 얽힌 유통 구조 등이 지목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쌀값 오름세를 사실상 방관하던 일본 정부는 올해 3월 비축미 방출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공급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비축미는 본래 심한 흉작 등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방출이 가능했으나, 쌀값을 낮추기 위해 관련 지침을 변경한 것이다. 하지만 비축미 방출 이후에도 쌀값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입찰 방식으로 판매한 비축미가 소매점에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5월 21일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 농림수산상에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른바 '반값 비축미' 방출 등을 통해 쌀값을 5주 연속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16∼22일 쌀 5㎏ 평균 소매가는 3,801엔(약 3만6,000원)으로, 한 달 전 대비 10%가량 하락했다. 일본 국민 다수는 고이즈미 농림상의 쌀값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쌀값 상승세가 꺾인 지난달 초순 이시바 시게루 내각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호재는 고이즈미 농림상의 쌀값 정책뿐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美의 '고율 관세' 위협
문제는 일본이 쌀 수입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경우, 미국 역시 맞불을 놓을 가능성 크다는 점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의 불법 이민자 구금 시설을 방문한 뒤 워싱턴 D.C.로 돌아오는 전용기 기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일본과 협상해 왔는데,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 이어 "미국의 대(對)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매우 크고, (이는) 미국 국민에게 매우 불공정하다"며 "일본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30%나 35% 또는 우리가 결정하는 수치(관세)를 지불하라는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매우 제멋대로라고 말해야 한다"며 "그들과 다른 나라들은 30~40년 동안 우리를 뜯어먹었고, 그들과 협상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NHK방송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미국 백악관 관리도 일본과의 협상을 뒤로 미루고 인도 등 다른 교역국과의 협상을 우선시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역시 지난달 30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일부 국가는 성실하게 협상하고 있지만, 그들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4월 수준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공회전하고 있는 일본을 향한 위협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