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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업체 철강재 수출 물량 '뚝' 경기 불황에 관세 불확실성 겹친 영향 핵심 공장 줄줄이 해외로

미국이 지난달 12일부터 수입 철강재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이달 들어 한국 업체의 철강재 수출이 9%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재 수출은 3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주요국 중에서는 멕시코로 나가는 철강재 물량이 지난달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멕시코 3월 수출량 38%↓ 주요국 중 가장 커
2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이달 1~20일 철강재 수출은 24억1,500만 달러(약 3조4,3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 줄었다. 지난 2월에는 철강재 수출이 전년 대비 5% 늘었으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한 3월에는 4.9% 감소했다. 철강재 주요 수출국 10개 중에서 지난달 감소율이 가장 큰 곳은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작년 철강재 수출 6위였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멕시코로 수출된 철강재는 14만1,864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8% 감소했다. 미국은 13.9% 줄었다.
철강업계에서는 멕시코 경기 불황에 더해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이 철강 수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멕시코의 월별 산업 생산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7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했다. 월별 제조업 활동 지표 역시 지난 2월 101.7포인트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4%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수요가 더 위축됐다. 미국은 지난달 4일부터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가 이틀 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제품은 관세 부과를 면제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관세는 일부 면제됐지만, 높아진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멕시코에 있는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대응했다고 분석한다. 현재 멕시코의 전체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달한다. 현대차, 기아, 삼성, LG, 현대모비스, 포스코 등 한국 기업도 멕시코에 생산 거점을 두고 한국산 철강을 수입해 쓰고 있다.

베트남에 46% 관세, 스마트폰-가전 초비상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우회 수출 기지로 활용돼 온 베트남에 46%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스마트폰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북부 박닌·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자사 스마트폰 물량의 50% 이상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만 연간 1억 대 이상의 스마트폰이 생산된다. 삼성전자의 나머지 스마트폰 물량은 인도, 인도네시아, 국내의 경북 구미 공장 등에서 생산한다.
문제는 베트남 공장 물량이 주로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이다. 이번 상호관세 조치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중국에 외주를 맡겨 생산하는 스마트폰 물량도 마찬가지로 상호관세 대상이 된다. 기존 중국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부과하던 관세(20%)에 새로 부과된 상호관세(34%)를 더해 최대 54%의 관세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의 22%를 외주 업체에 맡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 2일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는 90일간 이를 유예하고 기본 관세 10%만 부과하기로 했지만, 베트남에 생산 기지를 둔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탈한국’ 열차에 올라탄 기업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제조업 공동화(Industrial Hollow-Out)’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첨단 기술은 미국에, 전통 산업은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한국이 ‘중간 기술 압박’에 놓인 처지가 됐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실제 제조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외부 요인이다. 미국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신공급망 구축에 나서면서 ‘당근(IRA·CHIPS법 등)’과 ‘채찍(관세 부과)’을 앞세워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있고, 중국은 전통산업에서 자국 공급 과잉 물량을 저가에 전 세계로 밀어내고 있다. 손익분기점이 무너지자 우리 기업은 생산기지 다변화를 명분으로 줄줄이 인도·동남아 등으로 거점을 옮기는 중이다.
중국과 패권 경쟁에 나선 미국은 트럼프 1기 → 바이든 정부 → 트럼프 2기로 이어지며 당근(바이든)과 채찍(트럼프)의 양면 전략으로 한국 제조업 공동화를 가속화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선 자동차·가전 산업, 바이든 정부 때는 반도체·배터리 산업 중심으로 해외 이전에 불이 붙었다. 특히 관세를 핵심 무기로 삼은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공동화 추세는 더 심화하는 양상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현지화 외에는 뾰족한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선욱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주요 고객이 해외에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