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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자극 최소화-미국은 이익 확보
흑해 휴전 30일 만에 분위기 변화 뚜렷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 포기 가능성 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합의를 촉구하며 그 시점을 ‘이번 주’로 구체화했다.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재건과 산업 회복 프로젝트를 이끌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이에 외교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기대감 표현을 넘어 어느 정도 물밑 협의가 진행됐음을 의미하는 신호로 해석하는 모습이다.
‘전쟁 종식’ 공감대 형성됐나
20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이번 주 휴전 합의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면서 “이후 양국은 번영 중인 미국과 건설적인 사업을 시작할 것이고, 큰 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광물 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24일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휴전 및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흐르자, 지난 18일 “(중재에서) 손을 뺄 수도 있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나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오후 6시부터 21일 0시까지 부활절 일시 휴전을 선언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휴전 기간을 일부 연장하자고 제안했지만,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휴전 연장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휴전은 예정대로 20일 자정 종료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라는 구체적인 시점을 언급한 것을 두고 물밑에서 어느 정도 큰 틀의 합의가 끝났음을 시사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러시아로서는 더 이상의 확전이 부담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또한 전쟁 장기화로 경제·인적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어느 한쪽을 ‘지원만 하는 동맹국’에 머물기보다는 경제적 실익을 직접 챙길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군대 주둔’이 아닌 ‘건설적인 사업’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이 가장 경계하는 건 미군 주둔이지만, 미국 자본이 들어간 경제적 이해관계를 형성하면 우크라이나의 안보와 재건을 모두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러시아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 절묘한 타협점으로 평가받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대전제와 그 안에서 미국이 핵심 플레이어가 된다는 구조에 이미 합의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흑해 휴전, 기대 이상 성과
지금의 종전 가능성은 갑작스럽게 대두된 것이 아니다. 한 달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 일대에서 30일짜리 부분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약 두 시간에 걸친 긴 전화 통화 끝에 이뤄낸 결과다. 크렘린궁은 지난달 20일 언론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 과정에서 ‘분쟁 당사국들이 30일 동안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을 상호 중단하자’는 제안을 내놨다”며 “푸틴 대통령은 이 제안에 호의적으로 반응했고, 즉시 러시아 군에 상응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 중단 및 해상 전투 중단을 골자로 한 휴전안을 제안했고, 미국은 이를 ‘30일간의 전면 휴전’으로 바꿔 다시 제안했다. 러시아는 이 가운데 ‘전면 휴전’을 제외한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 중단만 미국과 합의했다. 나머지는 추후 협상 대상으로 미뤄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휴전안 자체는 지지하지만, 몇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며 휴전안 일부 합의의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흑해 30일 휴전은 갈 길이 먼 제한적 합의로 평가됐다. 그러나 흑해 지역 휴전이 유지되면서 국지 충돌이 눈에 띄게 줄고, 동시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채널이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면서 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전됐을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가 실렸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현실로 이뤄지면, 지난 한 달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의 ‘조용한 퇴각’ 또는 ‘명분 있는 정리’를 위한 준비 단계가 되는 셈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전쟁 이후의 그림
이제 남은 협상 조건은 사실상 마무리 작업에 가까울 공산이 크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민감한 쟁점으로는 국경선의 재설정이 꼽힌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현재 전선 상태를 새로운 국경선으로 고착하는 방안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일부 지역을 우크라이나가 현실적으로 회복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지배 아래 두는 식이다. 이는 우크라이나로선 뼈아프지만, 더 이상의 국지전 확대를 막고 전후 재건에 집중할 수 있는 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단순한 외교 중재자가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자로서 적극 개입할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건설적인 사업’을 언급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 자본이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재건과 산업 회복 프로젝트를 이끌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서 이번 협상의 핵심을 “군사력이 아닌 경제적 영향력의 재배치”라고 정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나라 사이 국경선이 바뀌면서 우크라이나는 예전과 같은 국가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미국 자본이 들어간 재건 체계가 안정된다면 전쟁을 멈추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현실적 해법으로 작동할 것이란 예측이다. 이와 함께 긴 비극의 막바지에 누가 전쟁 이후의 이익을 설계하고 있는지 또한 점점 분명해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