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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그리스의 ‘좀비 기업’ 퇴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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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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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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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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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대출 위기’ 극복
‘좀비 기업’ 퇴출이 핵심
부실기업 아닌 ‘근로자’ 보호해야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그리스는 10년을 넘는 혼란을 가까스로 넘기고 금융 위기에서 벗어났다. 수많은 좀비 기업(Zombie firms)과 누적된 부실 대출로 국가 경제가 마비에 빠졌지만 마침내 은행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이제는 생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스의 사례는 ‘살아있는 시체들’로 뒤덮인 다른 나라들이 참고할 만한 교훈을 제시한다.

사진=ChatGPT

그리스, 10년 넘은 ‘금융 위기’ 벗어나

부채 위기가 한창일 때 그리스 은행들이 보유한 부채의 절반 가까이가 부실 채권(non-performing loans, NPLs)이었다. 20%의 회사가 은행 및 정부 도움 없이는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사실상 경제적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생명줄’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은행들 덕에 호흡을 유지했다.

다행히 그리스의 부실 대출 비중은 최고 수준이던 50%에서 2023년 6.6%까지 내려왔으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수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고 700억 유로(약 114조원) 이상의 부실 대출이 추심 업체들에 맡겨진 상태다. 그런데 이들에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동기부여가 부족한 것도 문제 중 하나다.

전 세계 상장기업 10%가 ‘좀비 회사’

도움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좀비 기업은 그리스만이 아닌 글로벌적 문제다. CEPR에 따르면 전 세계 10% 정도의 상장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 건강한 회사에 제공돼야 할 자본과 노동력을 빨아먹고 저가 공세로 정상적인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임금과 생산성을 끌어내리는 것은 물론이다.

좀비 기업 비율 및 생산성 영향
주: 좀비 기업 비율(짙은 청색), 정상 산업 분야와의 투자금 차이(청색)

그리스는 ‘좀비 대란’(zombie crisis)에 세 가지 방법으로 대응했다. 먼저 헤라클레스 자산 보호 제도(Hercules Asset Protection Scheme)를 도입해 우선 변제 대상 부실 대출에 한해 정부가 지급 보증을 제공했다. 이 덕에 은행들은 750억 유로(약 123조원) 규모의 부실 채권을 해결하고 정상적인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또한 2021년 개정된 파산법(insolvency law)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걸리는 기간을 평균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한편 지정된 추심 업체들이 부실 자산을 처리하도록 해 은행들이 자산 상태를 회복하고 다시 대출 영업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성과는 인상적이다. 그리스 은행들의 핵심 자기자본 비율(core equity ratios)은 15%를 넘어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유로존 평균에 비해 훨씬 심각했던 투자금 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

부실 채권 비율 비교
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유로존 평균(좌측부터)

좀비 기업 유지는 ‘세금 도둑질’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속도는 나쁘지 않다. 비슷한 정부 보증 제도를 도입한 이탈리아는 초기에는 추심 업체들의 경험 부족으로 고생했지만 작년 부실 대출 비율을 3%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은 SAREB로 알려진 국영 자산관리회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나 진척이 느려 작년 말까지 40% 이상의 부실자산이 매각되지 않고 있다. 속도 면에서 두 나라 중간쯤 위치하는 그리스는 아직 처리해야 할 부실 채권이 유로존 평균보다 높지만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리려는 정부의 노력은 일자리와 기업가의 꿈을 보전해 준다는 대의명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도움과 대손상각(write-off) 지연을 통해 망해가는 기업을 떠받치는 것은 창업 지원이 아니라 세금 도둑질이다. 정부 보증 뒤에 국민의 혈세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잘못 없는 은행 고객들에게도 위험이 전가되고 건전한 기업의 대출 길이 막히기도 한다. 그리스의 경우 좀비 회사들이 즐비한 산업은 건강한 산업에 비해 생산적 투자가 6%P나 낮았다.

좀비 기업 아닌 ‘근로자’ 보호해야

시장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고 철 지난 사업 모델이 사라져야 신규 사업도 떠오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좀비 회사를 살리는 것은 편파주의(cronyism)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신속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좀비 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이 지역 경제의 중심이고 마을 전체가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경우는 더욱 심하다. 이들을 폐쇄하는 것은 정치적 도박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좀비 기업을 살려줄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는 임금 보험(wage insurance) 제도를 이용해 해고 근로자가 받던 임금의 80%를 2년간 보전해 준다. 임금 보험이나 재교육 지원이 시장 왜곡이나 지나친 재정 부담 없이 사태를 해결하는 더 좋은 방법이다. 투명성도 필요하다. 그리스는 부실 자산 가격 현황을 공개하지 않아 매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가격 평균을 익명으로 발표해 매각 과정을 신속화하고 손실을 줄였다.

이러한 경험들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들에 교훈을 준다. 먼저 정부 보증 프로그램의 기한을 명시해 기약 없는 긴급 구제(bailout)를 피해야 한다. 계속된 손실을 기록하는 기업은 신용 등급을 자동으로 낮춰 인간적인 고려가 개입되지 않게 해야 한다. 조세 자료를 활용해 부가가치세 납부금의 갑작스러운 감소 등 기업 도산 위기를 조기에 감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부실기업 보조금이 아닌 근로자 임금 보전과 재교육에 정부 예산을 투자하고 기업 청산 절차를 신속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엄격한 기한을 적용하라. 신속한 부실 자산 매각과 공정한 가격 형성을 위해 월별 현황 자료를 공개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부실 대출 줄이고 생산성 향상에 투자해야

진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갈 길은 아직 멀다. 8%에 이르는 소규모 기업이 아직 빚에 허덕이고 있어 소액 채무에 대한 빠른 감면 조치를 통해 생존 가능한 회사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올해 만료되는 헤라클레스 제도를 통해 남은 정부 보증 한도를 친환경 투자에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추심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도 빠른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4개 업체가 과점하는 상황은 동기부여를 제공하기 어렵다.

2017년 이후 그리스의 부실 대출 비율 감소는 정체 산업 분야에 40억 유로(약 6조5천억원) 상당의 신규 대출과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좀비 기업을 살려두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 어두운 미래 전망으로 이어지는 ‘비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게오르기오스 가토풀로스(Georgios Gatopoulos) 경제산업연구재단(Foundation for Economic and Industrial Research) 연구 책임자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Resolving non-performing loans and zombie firms: A path to sustainable growth in Greece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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