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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위축에 과시소비 트렌드 사라져
정책 불확실성, 장기 소비에 악영향
보복소비 회복 기대와 전혀 다른 양상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국 내 고급 외식업체들의 줄폐업이 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상류층의 소비 여력 위축에서 시작된 외식 업계의 위기에 해외 유명 레스토랑들도 앞다퉈 철수를 감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소비심리 위축을 넘어 구조적 경기 침체와 정책 신뢰 저하가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이 같은 위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먹는 데 돈 쓰는 건 낭비” 정서
19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내 주요 대도시에서는 고가의 해외 브랜드 레스토랑을 비롯한 고급 식당들이 줄줄이 철수하거나 폐업 수순에 들어섰다. 미슐랭 3스타를 자랑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페라봄바나(Opera Bombana)는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베이징을 비롯한 4개 점포의 문을 닫았고, 상하이 와이탄의 프랑스 레스토랑 라틀리에 18(L’Atelier 18)은 개업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영업을 종료했다.
대형 쇼핑몰 안에 입점한 해외 외식 브랜드도 점점 자리를 비우고 있다. 일본의 모스버거, 대만의 딘타이펑 등이 중국 사업 철수를 진행 중이며, 한때 웨이팅이 기본이던 프리미엄 뷔페 매장들도 임대 연장을 포기하고 폐업 절차를 밟고 있단 전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젠 맛집을 찾는 대신 아예 외식을 피하는 분위기”라며 “먹는 데 돈 쓰는 건 낭비라는 정서 자체가 짙어지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는 과거 중국에서 외식이 과시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것과 달라진 흐름이다. 중국인들의 소비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평소는 물론 특별한 날에도 외식 자체를 자제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것이다. 명품 소비가 먼저 꺾이고, 아이폰 판매가 감소하더니 이제는 ‘맛있는 식사 한 끼’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식이다. 식당만 떠나는 게 아니라 소비 여력 자체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애국소비·내수확대 담론도 효과 한계 직면
전문가들은 고급 식당의 몰락이 단순한 소비 위축을 넘어 구조적 경제 문제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중국 정부의 반부패 정책을 예로 들었다. 2012년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시작된 중국의 반부패 운동은 공무원들의 호화로운 접대 문화를 엄격히 통제했으며, 고급 식당 출입에 대한 사전 승인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고급 식당 매출은 급락했고, 마오타이와 같은 고급 주류의 소비도 따라 급감했다.
그러는 동안 중국 경제는 부동산·수출 중심의 불균형적 성장 전략을 고수해 왔다. 그 결과 민간 소비는 성장의 뒷전으로 밀렸고, 사회 전반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자’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됐다. 외식은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지출 항목인 만큼 이 같은 소비 위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식 외에도 여행, 문화생활, 식자재 등 사치재로 분류되는 분야 전반에 걸쳐 소비 냉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내세운 ‘애국소비’ 담론 역시 내수 부양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중국산 제품을 우선 소비하자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국민들의 소비 전환을 유도했지만, 실질적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어설픈 애국 마케팅으로 일시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구조적 경기 침체 속에서 소비 위축을 근본적으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청년들, 중산층도 ‘동반 긴축’
문제는 중국 내 소비 위축이 상류층 또는 사치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중음식점과 패스트푸드 체인, 프랜차이즈 매장 등 중저가 외식업계마저 매출 감소에 직면한 것이다. 소셜미디어(SNS) ‘인증샷’을 위해 맛집 투어를 즐기던 30대 이하 젊은 소비자들도 외식 빈도를 눈에 띄게 줄였으며, 이들은 저렴한 식재료로 집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공유하며 달라진 SNS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스타벅스의 위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타벅스는 1999년 첫 매장을 열며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 왔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중국 내 스타벅스 매장 수는 7,750개에 달하며,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국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성장은 수년째 제자리다. 2022회계연도부터 2024회계연도까지 스타벅스의 중국 매출은 변동 없이 3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스타벅스는 중국 사업을 재조정하는 차원에서 지분 매각 등을 추진 중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중국의 외식 산업 침체가 단기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관측이 일치했다. 실업률 증가와 청년층 경제활동 위축,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는 만큼 중국 경제 전반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전까지는 회복이 힘들 것이란 진단이다. 고급 식당에서 시작해 해외 외식 브랜드로 이어진 연쇄 폐업은 이러한 현실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자, 전 계층의 소비 위축이 본격화했다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