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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보내려 한 친서 北 수령 거부” NK뉴스 보도내용에 백악관 부인 안 해 레빗 대변인 “첫 임기 때 진전 보기 원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4개월여 만에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려는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서신 외교'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단절됐던 북미 간 대화가 본격적으로 재개될지 관심을 모은다.
백악관 "대통령, 서신 교환에 개방적"
1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정상회담 때와 같은 관계 진전을 원한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서신 교환에 여전히 개방적(recptive)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이어 “특정한 서신교환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답하도록 남겨 두겠다”고 덧붙였다.
레빗 대변인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NK뉴스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 수령을 북한의 뉴욕 UN주재 외교관들이 수령하기를 거부한다고 보도한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NK뉴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자신의 첫 임기 때와 같이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친서를 작성했다. 이후 이를 전달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외교관들이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레빗 대변인의 답변은 NK뉴스의 보도를 부인하지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소통에 열린 입장임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바탕으로 한 ‘톱다운’식 대북 외교에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과 소통하고 있다면서 "어느 시점에 북한과 관련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해 대화 재개를 시사한 바 있다. 같은 달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고려해 내외부 전문가들과 사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북 서신 외교 재개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김 위원장과 서신 외교를 통해 대화의 물꼬를 튼 바 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2018~2019년에 20여 통의 친서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외신은 "두 정상이 서신을 통해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본격적인 서신 교환 이후 두 사람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1차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양측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 송환 등에 합의했지만, 비핵화 방식에 있어 구체적 실행 방안 도출에 실패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범위와 제재 해제를 두고 양측 간 이견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결국 합의가 불발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후에도 생일 축하 전문 등 서신을 꾸준히 주고받으며 친분을 유지했는데, 이는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서 3번째 회동의 밑거름이 됐다. 북미 양측은 이후 비핵화와 제재 해제 등을 두고 실무 협상을 재개했으나, 진전을 보이지는 못했다.
"트럼프, 北 접촉해 우크라전 실마리 풀기 희망"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한 카드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에 병력과 무기를 지원하며 우군 역할을 하는 북한을 파고들어 러시아의 입지를 좁히려는 전략이란 설명이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과 연계된 북한을 우선적으로 분리하려 할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 김 위원장과 소통 채널을 복원해 러·북 밀착을 제한하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관심을 받으려는 본능이 발휘된 것일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회상하면서 '일생 중 가장 많은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취지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이 외에 장기적으로 북한을 흔들어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북한 해양 휴양지 개발 참여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는 견해도 다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때처럼 실제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실질적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NK뉴스는 북한 당국자들이 외교 당국자들이 친서 수령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안의 무게를 감안할 때 이는 김 위원장이 직접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교가 중평이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비핵화 요구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를 핵심적인 정책 기조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해 제재 완화 조치를 얻어내려 했지만, 미국의 전면적인 핵시설 폐기 요구에 직면했던 기억이 있다. 나아가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하며 북러관계를 확고하게 다진 상태에서 북미대화로 얻을 것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당장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중국 등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며 핵무력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자신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