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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모든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 매긴다 韓·EU 등 주요국 줄줄이 영향권 "자충수다" 美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 고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또 하나의 품목에 추가 관세가 매겨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유럽연합(EU) 등 대미 자동차 수출 비중이 큰 국가는 물론, 관세 장벽을 세운 미국까지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美 '자동차 관세' 현실화
26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미국에서 생산된 차에는 전혀 관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2.5% 기본 관세에서 시작했는데, 이제 25%로 (관세를) 올리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관세를 내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이 행정명령 서명 후 별도로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5% 관세는 세단·미니밴 등 수입산 승용차와 경트럭, 엔진·변속기·파워트레인 부품·전기 부품 등 주요 자동차 부품에 적용된다. 필요한 경우 추가 부품에 대한 관세 확대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 백악관 측 설명이다.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따라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차 등의 경우, 제품의 비(非)미국산 요소에 대해서만 25% 관세가 부과된다. USMCA 규정을 준수하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무관세 조치는 미국 상무부 장관이 관세국경보호국(CBP)과 협의해 제품에 들어간 비미국 요소에 관세를 부과할 프로세스를 수립할 때까지 유지된다.

현대차·한국GM 타격은?
미국의 무역 장벽이 한층 높아진 가운데, 한국 자동차업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707억8,900만 달러, 약 103조6,600억원) 중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9%(347억4,400만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전기차를 포함한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 2016년부터 무관세를 적용해 왔다.
다만 피해 수준은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핵심 플레이어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리며 관세 회피 방안을 마련해 둔 상황이다. 지난 25일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 120만 대 체제 구축을 위해 86억 달러(약 12조6,400억원)를 투입하고, 루이지애나주에 저탄소 자동차 강판에 특화한 270만 톤(t) 규모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로 위대한 회사인 현대와 함께하게 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현대차는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반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대미 수출 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GM은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GM의 지난해 연간 판매량은 49만9,559대였으며, 이 중 47만4,735대(95%)가 수출됐다.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1만8,782대(88.5%)다. 전체 판매량의 83.8%가 미국으로 향한 셈이다. 같은 기간 국내 판매량은 2만4,824대로 수입차인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보다도 적었다.
美·EU 피해 전망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관세 부과로 인해 오히려 미국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평균 자동차 가격이 5,000~1만 달러(약 732만~1,465만원)가량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일반적으로 25% 관세율은 미국 소비자가 사실상 견딜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숫자라는 지적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들도 “장기적으로 볼 때 관세 정책은 미국 국내 투자와 생산을 촉진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싱크탱크 앤더슨 이코노믹 그룹은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산 전기차 가격이 최대 1만 2,000달러(약 1,758만원), SUV 생산 단가가 4,000달러(약 586만원) 이상 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막심한 피해를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EU산 자동차의 최대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560억 유로(약 88조4,380억원) 상당의 차량 및 부품을 미국에 수출했다. 이는 EU 전체 자동차 수출액의 20% 수준이다. 관세로 인해 대미 자동차 수출이 위축될 경우, 업계 고용 상황이 악화하며 유럽 경제 전반이 흔들릴 위험도 있다. 자동차는 EU에서 직간접적으로 1,3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핵심 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