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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중국 입항료 부과 위해 행정명령 서명 미국 해운업·수출 산업 타격 우려 美 산업계 "관세 전쟁보다 더 큰 혼란 야기할 것"

중국의 해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입항료 정책'이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 무역대표부(USTR)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다만 현지 업계는 입항료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미국 조선·해운업계와 무역 시장에 '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美의 입항료 정책
11일 주요 외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조선 산업 재건과 중국의 글로벌 해운 산업 지배력 약화를 위한 행정명령에 정식 서명했다. USTR은 해당 행정명령을 바탕으로 중국산 선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입항료 정책을 입안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월 USTR은 중국 해운사의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공표한 바 있다.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 입항 수수료라는 새로운 규제 도구를 꺼내 든 것이다. 당시 USTR은 해당 조치가 미국 통상법 301조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수퍼 301조’라고도 불리는 해당 조항은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 미국 업체들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미국이 보복 관세 등 제재를 단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개된 안에 따르면 미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 해운사 소속 선박에는 최대 100만 달러(약 14억원) 또는 선박 용적 1톤당 최대 1,000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도 선단 내 중국산 선박 비율에 따라 추가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 중국산 선박 비율이 25% 이상 50% 미만이면 입항 1회당 최대 75만 달러(약 10억7,000만원), 50% 이상이면 최대 100만 달러가 추가되는 식이다.
불안에 떠는 美 산업계
미국 현지 산업계에서는 입항료 정책에 대한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선박들의 입항료 부담이 가중될 경우 오히려 미국 산업계에 '역풍'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다. 세계해운협회(WSC)에 따르면, 입항료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차후 전 세계 선박의 약 98%가 미국 항구에 기항할 때 입항료를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아직 건조되지 않은 발주 물량 등을 모두 고려한 수치로, 현재 기준으로는 전 세계 선박의 90%가 입항료 부과 대상이다.
입항료 정책은 해운업을 넘어 미국의 수출 산업 전반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미국 신발·의류협회는 입항료 정책으로 인해 미국 수출이 약 12% 감소하고, 국내총생산(GDP)이 0.25%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피터 프리드먼 농업운송연합 이사는 "미국 농업 수출업체는 이 제안에 대한 우려와 반대로 뭉쳤다"며 "이는 미국 국경 밖에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조 크레이멕 WSC 회장 역시 USTR이 제시한 방안이 현실화하면 컨테이너당 600~800달러(약 87만~116만원)의 요금이 추가되며, 미국 수출품 운송 비용이 두 배가 돼 농부들에게 특히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제안은 미국 수출업체와 소비자 비용 증가, 공급망 비효율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중국이 정책이나 관행을 변경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유인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中, 해운·조선업계서 '독주'
업계 일각에서는 입항료 정책이 관세 전쟁보다 더 큰 무역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미소매업연맹의 조나단 골드 부사장은 "전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선 항만 수수료를 관세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해운업체들은 비용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특정 항로에서 철수할 것이며, 따라서 오클랜드와 찰스턴, 델라웨어, 필라델피아 등 소규모 항구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이 이처럼 미국의 입항료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중국이 글로벌 해운·조선업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해운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 세계 신규 선박 수주 점유율은 7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세계 수주량 6,581만 CGT(표준선환산톤수) 중 4,645만 CGT를 확보한 것이다. CGT는 단순 선박의 크기나 무게가 아닌 선박 건조의 난이도와 부가가치를 반영한 ‘기술적 가치’를 표현하는 단위로, 조선사의 실질적인 작업량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평가된다.
중국은 선박 건조뿐만 아니라 글로벌 항구 터미널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다. 미국 해군전쟁대학 중국해양연구소의 조교수인 이삭 B 카든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 기업은 전 세계 96개국의 항구에서 하나 이상의 터미널을 소유하거나 운영 중이다. 아울러 전 세계 상위 100개 항구 중 25개가 중국 본토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 주요 컨테이너 항구의 약 61%가 중국과 연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