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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아시아판 NATO·전술핵 공유 제안, 집단안보 체제 실현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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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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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명예이사장, SAIS 기금 기탁식에서 화두 던져
"북·중·러 군사적 모험주의 대응해 협력 강화 필요"
"유럽에 전술핵 배치했듯이 한반도에 재배치 고려해야"
지난 17일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이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대학원(SAIS)에서 열린 '정몽준 안보 부문 석좌교수직 기금 기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아산정책연구원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이 북한·중국·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가칭 '인도·태평앙조약기구(IPTO)'의 창설을 제안했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아시아판 NATO'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며 미·일 동맹의 재편과 전술핵 공유를 주장하는 등 최근 아시아의 집단안보 체제 구축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안보의식을 공유해 온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 간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산업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집단안보 체제가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와 동맹국들, 북·중·러에 강력한 협력 의지 보여야"

17일(현지시각) 정 명예이사장은 미국 워싱턴 DC의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대학원(SAIS)에서 열린 '정몽준 안보 부문 석좌교수직 기금 기탁식'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국들이 북한·중국·러시아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아시아판 NATO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3년 이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 명예이사장은 석좌교수직 기금으로 750만 달러(약 108억원)를 기탁했다. 해당 기금은 세계 안보 문제 연구와 신진 학자 양성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서 정 명예이사장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전문가와 지도자들이 아시아의 집단 안보 체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아시아판 NATO의 명칭으로 IPTO를 제안했다. 이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체제를 중심축(Hub)과 바큇살(Spoke)의 관계에 비유하며 구체적인 참여국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필리핀·태국 등 바큇살에 해당하는 동맹국 간의 협력(spoke to spoke)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아울러 인도·인도네시아·싱가포르·베트남과 같은 중요한 파트너들과의 협력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명예이사장은 한국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지속되는 기적(miracle in progress)'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중국은 지난 10년간 일본·필리핀·호주·캐나다에 대해 경제·외교적 강압을 행사해 왔다"며 "한국도 지난 2016년 북핵·미사일 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체계(SAAD)를 배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은 한국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군용기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침투시키는 등 군사적 위협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전술핵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이사장은 "미국이 냉전 종식과 함께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지역에서 전술핵 무기를 철수한 반면, 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유럽에는 100여 개의 전술핵 무기를 배치했다"며 "안보 위협이 더 심각한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술핵의 일부를 한국 기지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5월 정 이사장은 '아산플래넘2024' 환영사에서도 "한국도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기반 마련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日 이시바도 평화헌법 개정, 대등한 미·일 동맹 등 제안

아시아판 NATO에 대한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제102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가 총재 당선 이틀 전인 지난해 9월 25일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 정책의 장래'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시아판 NATO의 창설을 주장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UN 집단안보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아시아의 내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중국·대만과 등치시키면서 중국, 나아가 북한과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아시아판 집단안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해당 기고문에서 쿼드(Quad)·오커스(AUKUS) 등 미국 주도의 소다자(小多者) 체제는 물론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거론하면서 일본이 캐나다·호주·필리핀·인도·프랑스·영국과 유사 동맹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관련한 소다자 협력 체제를 모두를 묶어 아시아판 NATO를 창설할 수 있다는 게 이시바 총리의 구상이다. 그러면서 동맹의 핵심 축인 일본은 제도적으로 새로운 안보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보기본법 제정과 함께 일본의 전력 보유를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또 다른 한 축인 미국은 전술핵 무기를 역내에 반입해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들과 이를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미·일 동맹을 대등한 동맹 관계로 바꾸자고도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을 지키는 의무'를 지는 대신 일본은 미군에 '기지 제공 의무'를 다하는 게 미·일 안보조약의 기본 구조였지만, 이제는 이런 비대칭을 고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미·영 동맹에 버금가는 대등한 관계로 미·일 동맹을 강화해 지역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며 "미·일 안보조약을 '보통 국가' 간 조약으로 개정할 조건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또 그는 주일미군 지위 관련 협정인 미·일 지위협정을 개정해 자위대를 미군 핵심 기지 중 한 곳인 괌에 주둔시켜 억지력 강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면서 일본이 독자적인 군사전략권을 확보하는 '군사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美 중심 양자동맹·소다자주의가 현실적 대안이란 지적도

다만 이시바 총리의 제안을 두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NATO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의 생명력은 통일된 위협 인식과 공통의 안보 이해관계에서 나온다. NATO의 설립 목적 자체가 소련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는 데 있었던 만큼 소련이 '공통의 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고 회원국 하나가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면 다른 모든 회원국도 자국이 침략당한 것으로 간주해 공동으로 전쟁에 나서는 데 반대하는 나라가 없었다. 또한 유럽은 안보 문제에 대한 다자적 협의와 평화적 위기 해결의 전통이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부터 거의 4세기에 걸쳐 축적돼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상황은 유럽과 다르다. 위협 인식과 안보 이해관계가 나라마다 상이해 집단안보 체제 구축의 정치적 기반이 결여돼 있고 다자 안보 협력의 역사도 일천하다. 예를 들어 중국이 일본이나 필리핀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한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한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이나 필리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더욱이 아시아판 NATO가 사실상 중국을 염두에 둔 구상임을 전제로 할 때 이시바 총리가 주장하는 평화헌법에 따른 상호 방위는 인정되기 어렵다. 또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가 많다는 점도 집단안보의 한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정학적 구조와 정치적 기반을 고려할 때 결국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미국과의 양자 동맹 체제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고, 양자 동맹을 연결하는 소다자주의로 이를 보완해 나가는 것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동아시아 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 역시 현재처럼 소지역별·사안별로 분화된 동맹 시스템하에서 융통성 있게 대응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체제가 핵으로 무장한 북한·중국·러시아 3자 연대에 대항할 실질적 능력을 갖춘 유일한 소다자적 틀이지만 현 단계에서 이를 동아시아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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