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붙잡아라" 영화 관세 필요성 주장하는 트럼프,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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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해외 제작 영화에 관세 100% 부과하겠다" 할리우드, 美 현지 제작비 부담에 해외 촬영 늘려 혼란에 빠진 美 영화업계, 日 등 반사이익 누릴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외국산 영화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재언급했다. 미국 영화업계가 현지 콘텐츠 제작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속속 해외에 촬영 거점을 마련하는 가운데, 통상 압박을 통해 자본 유출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계획이 시장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내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자국 영화업계 압박
12일(이하 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부터 지속적으로 영화업계에 관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는 당시 “다른 나라들은 미국 영화 제작사와 스튜디오들을 미국에서 끌어내기 위해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외국산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해당 계획은 언급된 이후 수개월간 보류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이 재조명된 것은 지난달이다. 9월 29일 그는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미국 밖에서 제작된 영화에 관세 100%를 부과하겠다”며 "우리 영화 산업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도둑맞고 있다"고 적었다. 아울러 자신과 줄곧 설전을 벌여온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론하며 “약하고 무능한 주지사 때문에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책은 미국 영화 업계가 외국 제작을 채택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와중에 나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할리우드는 캐나다·영국·호주 등 해외 제작 거점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고, 아시아·유럽 등 해외 스튜디오와의 공동 제작에도 힘을 싣는 추세다.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 촬영지별 제작비는 미국(145억4,000만 달러)·영국(59억1,000만 달러)·캐나다(54억1,000만 달러)·호주 및 뉴질랜드(20억4,000만 달러) 등 순으로 컸다.
제작비 아끼려 美 떠나는 할리우드
이처럼 미국 영화업계가 해외로 거점을 옮기기 시작한 것은 미국 내 콘텐츠 제작 비용 부담이 눈에 띄게 커졌기 때문이다. 제작비가 상승한 배경으로는 스트리밍 시대의 도래가 꼽힌다. 이와 관련해 CNBC는 “스트리밍은 미디어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꿨고, 영화관 관객은 줄었으며, DVD 판매 수익도 사라졌다”며 “그 결과 디즈니, 유니버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같은 미디어 대기업들은 지상파 TV 붕괴와 광고 수익 감소가 의미하는 바를 계산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인 제작 거점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 체코 등 많은 나라들이 세제 혜택을 늘리고 촬영 인프라를 확충하며 유치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022~2024년 사이 호주·뉴질랜드에서는 4,000만 달러(약 571억4,800만원) 이상 규모의 제작이 14%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4,000만 달러 이상 규모 영화 제작은 26% 감소했다.
미국 현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호한 영화 관세안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 리서치·컨설팅 업체 포레스터의 마이크 프룰룩스 부사장은 “영화는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이기 때문에 서비스에 어떻게 관세를 매길 수 있을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며 “만약 어떤 허점을 찾아 관철한다 해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금융 서비스 업체 웨드부시 애널리스트 앨리샤 리스도 “만약 주요 스튜디오가 미국에 있어도 스토리상 해외 촬영이 불가피한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며 “기준선은 어디인가”라고 꼬집었다.

글로벌 영화업계 영향은?
일각에서는 이 같은 미국 영화업계의 혼란이 저비용으로 양질의 영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할리우드 대비 적은 투자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출 성과를 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진격의 거인>은 5시즌 동안 1,000만 달러(약 142억8,700만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제작비는 에피소드당 1,000만 달러였다. 2025년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2,000만 달러(약 285억7,400만원)의 예산으로 전 세계에서 여섯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로 등극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의 경우 할리우드의 관세 리스크로 인한 반사이익을 누리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한국 영화 콘텐츠의 수출 규모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4년) 기준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액은 약 4,193만 달러(한화 약 601억 원)이며, 이 가운데 대미 수출액은 약 421만 달러(한화 약 60억원)에 그친다. 한국 영화업계는 트럼프의 영화 관세가 현실화할 시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만큼 글로벌 시장의 빈자리를 꿰차기도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