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업 대상 무역 규제 강화하는 EU, 우회 수출 움직임 가속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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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150유로 이하 소액 거래 대상 '무관세 혜택' 폐지한다
"서방국 규제 피해라" 中 스타트업의 싱가포르 워싱
中 전기차 업계, 판로 개척 위해 모로코·멕시코 등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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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온라인 소매업체를 대상으로 시행하던 무관세 정책을 폐지한다. 역내에서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를 중심으로 상품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관세 부과를 통해 이들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에 시장에서는 차후 중국 기업들이 우회 수출 등 서방국의 무역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활로’를 찾아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무관세 폐지’ 카드 꺼내든 EU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역외에서 EU 소비자에게 직접 물품을 운송하는 온라인 소매업체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던 무관세 혜택을 폐지할 예정이다. 150유로(약 22만원) 미만 물품은 무관세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규정을 폐지하고, 소액 거래 시에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한 당국자는 이 같은 조치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무관세 폐지가 EU 역내 산업계 등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라는 평도 흘러나온다. 최근 현지 시장에서는 중국 소매업체들이 테무 등 온라인 플랫폼을 앞세워 안전성 문제가 있는 상품을 유럽에 판매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화장품, 장난감, 전자제품 등 EU 회원국에서 보고된 위험 수입품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50% 급증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EU 집행위원회는 이미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토대로 알리, 테무, 쉬인에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며 “이번 무관세 폐지 방안이 현실화하면 이들 업체의 시장 경쟁력은 크게 약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U 집행위원회는 FT의 보도와 관련해 “‘무관세 폐지’를 제안한 건 맞다”면서도 “작년 5월 발의한 관세 개혁안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제안 당시) 이 조치가 사기범들(fraudsters)에 의해 남용되고 있고, 150유로 미만이라는 상품 소포의 65%가 실제 값어치보다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행 택하는 中 AI 기업들

한편 시장에서는 서방국의 무역 규제 강도가 높아질수록 중국 업체들의 ‘우회’ 움직임 역시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실제 최근 다수의 중국 인공지능(AI) 기업들은 싱가포르 등 규제가 덜한 국가에 둥지를 틀며 규제 회피에 전념하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수출 제한 범위를 AI 반도체 칩으로 확대하면서 중국에서의 AI 스타트업 운영이 어려워지자, 소위 ‘싱가포르 워싱'(Singapore-washing, 중국 기업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는 것)을 선택하며 해외 투자자·고객 유치 통로를 확보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AI를 군사 분야 등에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으로의 AI 관련 기술 및 칩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생성형 AI 열풍을 일으킨 오픈AI는 이달부터 중국에서 자사 AI 모델에 대한 접속을 차단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중국 AI 스타트업 대부분은 미·중 갈등 속 미국 및 해외 기업의 중국 기피 현상,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한 엔비디아 칩 등 첨단 기술 구매 제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들 기업은)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싱가포르행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찬이밍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부청장은 “중국 기업을 포함한 많은 스타트업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의 허브로 선택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 기준 싱가포르에는 1,100개 이상의 AI 스타트업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들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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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전기차 업체들의 우회 수출 움직임

서방국의 무역 장벽에 부딪힌 중국 전기차 관련 기업들은 모로코 등 우회 수출로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중국의 고션 하이테크(Gotion High-Tech)는 모로코 정부와 총 13억 달러 규모의 첫 번째 전기차 배터리 기가팩토리 프로젝트를 체결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하이량(Hailiang), 신줌(Shinzoom), BTR 등은 최근 모로코 생산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과 서구 합작 기업의 일련의 투자를 확정 짓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모로코 정부의 북아프리카 전기차 선도 전략 △EU와의 거리적 근접성 △EU 및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모로코 전기차 시장의 매력으로 지목한다. 활발한 대(對)EU 수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다. 모로코의 지난해 대EU 자동차 수출액은 140억 달러(약 19조원)에 달한다.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전통 강국을 제치고 EU의 주요 자동차 수출국 및 제조업 기지로 부상한 것이다. EU 및 미국 시장 접근 경로를 다각화해야 하는 중국 기업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시장인 셈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우회 수출’ 무대로 떠오른 것은 모로코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 역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유력한 서방국 수출로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중국산 전기차가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에 유입되며 시장 질서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해 재집권 시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 중국의 우회 수출 움직임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