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정황 포착’ 의사 1,000명 중 100여 명 피의자 전환, 판 커지는 리베이트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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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 기존 입건 22명에 이어 추가 입건 발표 "더 늘어날 것"
의협 ‘보복성 수사’지적에 경찰 “권익위가 의뢰한 사건” 반박
제약사엔 ‘철퇴’ 의사엔 ‘솜방망이’, 무색해진 ‘리베이트 쌍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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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고려제약으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의사 1,000여 명 중 100명 이상을 피의자로 추가 입건했다. 경찰 수사가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 피의자로 전환되는 의사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의 리베이트 근절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취득한 의사와 이를 제공한 제약사 양쪽을 모두 처벌하는 쌍벌제 등 당국의 규제에도 불법 리베이트의 그림자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불법 리베이트’ 의사 추가 입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의에 “기존에 입건한 제약사 8명, 의사 14명 등 22명에 이어 관련자 조사와 압수물 분석을 통해 의사 100여 명을 추가 입건했다”며 “입건된 의사를 상대로 출석 일자를 조율해 신속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앞으로 입건 대상 의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고려제약 관계자와 영업사원 등 70여 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했으나, 관련자 조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입건자는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수사 의뢰로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수사하던 해당 사건을 지난 3월 중순께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로 이관했다. 앞서 경찰은 의사 1,000여 명이 고려제약으로부터 적게는 수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현금·가전제품 등 금품을 받거나 돈 대신 호텔 쿠폰, 골프 접대, 자동차 리스비 등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선상에 올렸다. 특히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고려제약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 내용이 상세하게 적힌 ‘BM'(블랙머니)이란 이름의 엑셀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해 말부터 의사들을 상대로 자사 약을 써주는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고려제약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려제약의 주력 사업은 뇌전증·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등 중추신경계(CNS) 의약품으로 신경정신과, 내과 등에서 처방하는 약품인 만큼 사건에 관련된 병원과 의사가 상당수인 걸로 알려졌는데, 그 구체적인 규모를 경찰이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경찰은 고려제약 외에도 의료계 전반으로 불법 리베이트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5일 경기 안양시의 한 종합병원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병원 병원장 등 관계자들은 특정 회사 제품을 사용하기로 하고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또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리베이트 의혹 관련 사건 19건 중 6건이 서울경찰청에 하달됐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 성격도 있고 집중 수사를 위해 전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로 일괄 배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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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의사 악마화 위한 여론 몰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의 단체행동에 대한 보복성 수사가 아니냐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의협의 집단행동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일축했지만, 의료업계에서는 명백한 보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4월 29일 고려제약 본사를) 압수수색한 결과 확인이 필요한 대상은 의사 기준으로 1,000명 이상”이라며 “금품을 받은 경위에 따라 입건자가 1,000명 다 될 수도 있고 덜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 제약사의 문제라고 보기 적절하지 않아 더 들여다봐야 한다”며 고려제약뿐만 아니라 다른 제약회사를 대상으로도 리베이트 관련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앞으로 후폭풍을 예고했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경찰의 발표시기를 두고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구심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의대증원 사태 초기부터 의사에 대한 압박책으로 리베이트 사건 활용 가능성을 엿보던 정부가 결국 집단행동을 앞둔 의료계에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의협에 따르면 경찰이 고려제약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29일이다. 이후 고려제약 관계자 8명, 의사 14명을 입건한 상태였다. 그런데 경찰청장의 발표는 의료계의 집단휴진이 예고된 6월 18일을 하루 앞둔 17일로, 수사 시작 이후 두 달여가 흐른 뒤 느닷없이 수사 중간과정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경찰이 ‘의사 악마화’를 위한 여론 작업에 돌입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아직 수사가 마무리되지도 않은 사건을 놓고, 경찰청장이 직접 대다수 의사들이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것처럼 언론을 호도하는 배경에는 의사 악인화를 위한 의도가 내포돼 있다는 지적이다.

환자만 피해 보는 의약품 리베이트

하지만 전문가들은 리베이트 행위가 전문의약품 시장 특성상 환자에게 적합한 의약품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중대한 위법 행위인 만큼 정부 대응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 같은 리베이트 행위는 결과적으로 약값 인상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약사가 의사에게 의약품 처방 대가로 약값의 20%를 리베이트로 제공했다면 제약사는 이에 비례해 20% 더 높은 약값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보게 된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불법 리베이트는 환자에게 적합한 의약품 대신 의료인에게 이익이 되는 의약품을 선택하게 하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다. 즉 품질이 아닌 ‘누가 나에게 리베이트를 더 많이 제공하는가’에 따라 의약품을 결정해 환자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는 것이다. 아울러 약 처방액을 정해두고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인 탓에 의약품을 과잉 처방해 국민 건강권을 해치고, 더 나아가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리베이트 근절 위해 ‘쌍벌제’ 도입했지만, 여전히 의사 처벌은 미흡

현행법상 의약품 리베이트는 의료법(제23조의5), 약사법(제47조)에 의해 금지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징역·벌금)과 행정처분(면허취소·면허정지)을 받는다. 2010년 11월부터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면서 의약품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는 물론 제공받은 의료인·약사도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

그럼에도 의료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리베이트로 인한 처벌이 이익에 비해 가볍기 때문이다. 실제 제약사와 의료인이 받는 처분의 온도차는 확연하게 갈린다. 리베이트가 적발된 제약사는 과징금에 더해 약가 인하나 급여 정지 등의 처분이 내려지는 반면, 의료인의 경우 리베이트 금액에 따라 통상 2개월에서 12개월의 자격정지 처분만 받게 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리베이트 혐의로 적발된 의사·한의사·약사 등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 224건 중 자격정지가 147건으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했다. 자격정지 기간은 4개월이 46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2개월 38건, 10개월 17건, 2개월 16건, 8개월 12건, 6개월 10건 등이 뒤를 이었다. 그보다 수위가 낮은 경고는 54건이었다.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아예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리베이트가 적발된 일부 경우다. 의료법·약사법과 달리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되더라도 의료인은 처분을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1월에서 2022년 8월까지 공정위가 적발한 리베이트 사건 11건 중 에스에이치팜과 프로메이트코리아, 한국애보트, 메드트로닉코리아 등 4건은 쌍벌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 57명은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더욱이 리베이트가 적발된 제약사는 사명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되며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 데 반해 의료인이 입는 피해는 사실상 미미하다.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의료인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만 알려질 뿐 소속 의료기관이나 이름 등은 일절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 고려제약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이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고려제약 관계자와 의사를 입건한 가운데,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명단은 공개되지 않아 균형 논란에 불이 붙었다. 쌍벌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