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농식품부 ‘韓 물가 수준’ 놓고 대립각, ‘금사과 파동’ 이어 농산물 정책 재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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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우리나라 주요 농축산물 물가 OECD 최고 수준"
농식품부 "38개 OECD 국가 중 19번째, 물가 안 높다"
송미령 장관 “한은, 농업 분야 전문가 아냐” 작심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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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중앙은행이 농식품 물가 수준 및 고물가 해법을 놓고 열띤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농산물·식료품 물가가 해외에 비해 높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유엔 자료를 들어 반박했지만, 한은이 다시 정부가 ‘물가 상승률’과 ‘물가 수준’ 개념을 뒤섞어 사용하고 있다고 재반박에 나서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양 기관은 농산물 수입 비중에 대해서도 입장차를 보였다. 한은은 농산물 수입 비중이 작아 가격 변동성과 불확실성에 취약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개방을 더 확대하면 농산물의 수입 의존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은이 ‘OECD 최상위권 물가’ 강조하자 ‘FAO 순위’로 반박한 농식품부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은과 농식품부가 국내 식료품 물가 수준을 놓고 반박과 재반박을 이어가면서 양 기관 간 공방전이 확대되고 있다. 발단은 한은이 지난 18일 발표한 ‘우리나라 물가 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물가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중간 수준이지만, 의식주 물가는 55% 더 높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통계(2023년 주요국 수도 중심)를 분석한 결과다.

의식주로 나눠보면 의류·신발과 식료품의 가격지수는 OECD 평균보다 약 1.6배 높았고, 주거비는 1.2배로 모두 평균을 웃돌았다. 세부 품목별로 살펴보면 사과는 OECD 평균보다 약 2.8배, 감자 2배, 돼지고기 2배, 티셔츠는 2배 더 높았다. 반면 공공요금(전기·가스·수도, 대중교통) 가격지수는 OECD 국가 평균보다 27% 낮았다. 택시비는 다른 나라의 0.8배 수준이었으며, 수도요금과 전기료 등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낮았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의식주 필수 생활물가는 더 높아지고, 공공요금 물가는 더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OECD 평균과 비교할 때 한국의 식료품가격은 1990년 1.2배에서 지난해 1.6배로 더 오른 반면, 같은 기간 공공요금 수준은 평균의 0.9배에서 0.7배로 오히려 떨어졌다. 한은은 높은 농산물 가격의 원인으로 농경지 부족과 영세한 영농으로 인해 생산단가가 높고, 유통비용이 높은 데다 수입을 통한 공급도 제한적이라는 점을 꼽았다.

이에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송미령 장관은 이튿날인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식료품 가격은 OECD 평균보다 높지 않다”고 반박하며 “한은은 농업 분야 전문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복잡다기한 농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역설했다. 근거로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순위를 들었다. 물가의 경우 데이터를 언제 조사했는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지는데, 유엔 FAO 데이터로 할 경우 우리나라는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19위라는 설명이다.

농식품부는 한은이 EIU 자료를 쓴 점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IU 자료는 33개국의 주요 도시 생활비만 분석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GDP(국내총생산)의 52∼53%가 서울에서 나오기 때문에 물가가 과다하게 추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송 장관은 EIU의 조사 방식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각 도시에서 사과 가격 2개를 뽑아 평균을 내고 비교하다 보니 허점이 많아 흔하게 쓰이는 데이터도 아니라는 것이다.

송 장관의 간담회 직후 한은은 즉시 재반박에 나섰다. FAO 자료는 한은이 말한 ‘물가 수준(level)’이 아니라 ‘물가 상승률’ 개념의 통계라는 점에서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반론이다. 한은에 따르면 FAO 통계는 2015년 물가 수준을 지수로 환산해 해당 지수를 100으로 놓고 이후 2022년까지 물가 지수의 누적 상승률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한은은 우리나라 과일·채소 등 농산품가격이 OECD 평균보다 1.5배 넘게 높다는 2022년 OECD의 ICP(국제비교프로그램) 통계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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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시장 개방도’ 두고도 엇갈린 진단

한은과 농식품부는 농산물 시장 개방 수준을 두고도 엇갈린 진단을 내놨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농산물의 낮은 수입 비중으로 인해 국내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농식품 물가가 훨씬 높다고 진단하면서, 농산물 개방도를 ‘수입량/(수입량+국내 생산량)’으로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과일 수입 개방도는 한국 35.1%, 미국 71.8%, 유로존 48.7%, 채소는 한국 24.3%, 미국 42.5%, 유로존 45.8%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한은은 소비자 선택 범위를 넓히고 가격 안정화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농산물 수입 물량을 확대하고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농산물 시장 개방도를 계산하는 방법은 한은과 달랐다. 특히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도가 다른 국가보다 현저히 높다고 반박했다. 농식품부는 농업부문 GDP 대비 농업교역액(수입+수출) 비율을 개방도(무역개방도)로 보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세계은행(WB)에 공개된 한국의 농업부문 무역개방도(농림수산업 부가가치 기준)는 1999년 28%에서 2022년 46%로 크게 늘었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OECD 회원국의 농업부문 무역개방도 평균치는 36%에서 44%로 증가하는 데 그쳤고, 호주는 39%에서 21%로 오히려 크게 감소했다.

농식품부는 한은과 개방도 개념 정의가 다른 이유에 대해 “국제적으로 무역개방도를 분석할 때 흔히 GDP 대비 교역액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송 장관도 “개방 부문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며 “GDP 중 교역량 비중을 개방 수준으로 봐야 하고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개방도가 높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과를 비롯한 일부 농산물은 검역 협상의 문제로 수입이 안 되고 있을 뿐, 통상 차원에서 농산물 개방도는 높다는 주장이다. 이어 송 장관은 “우리나라 농산물 수입액은 약 40조원에 달해 교역량으로 보면 개방도가 낮지 않다”며 “수입 농산물은 시장 자체가 다르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수입량을 늘린다고 국내 농산물 가격이 낮아지지는 않는다”고 일축했다.

금사과 대란으로 촉발된 논쟁, “농산물 수입해야” vs “수입 부작용 크다”

한은과 농식품부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양 기관은 두 달 전에도 설전을 벌인 바 있다. 논쟁 출발점은 ‘사과’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사과’와 ‘대파파동’이 일었던 지난 4월 금융통화회의 직후 농산물 수입을 주장하면서다. 이 총재는 당시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이 재배면적 더 늘리고 재정을 쓴다고 해결될까”라며 “불편한 진실인데 물가 수준, 특히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통화·재정정책으로 해결할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때그때 지원금을 주는) 지금과 같은 정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생산 감소와 고물가를 재정 지원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사과·배 수입을 금지하는 지금의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농식품부는 수입 위험분석 절차를 마치기 전에는 수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한은의 발언에 대한 반론을 내놨다. 수입 허용 시 외래 병해충 유입과 같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2015년 발생한 과수화상병(잎과 줄기가 말라 죽는 병)이 외래 병해충 유입의 대표 사례다. 당시 미국에서 불법 반입된 사과 묘목을 통해 과수화상병이 보고된 후 현재까지 34개 시군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른 연평균 손실 보상액은 지난해까지 247억원, 방제 비용은 365억원이 소요됐다. 해외에서 반입된 작은 막대 모양의 세균이 사과 과수원을 습격하면서 10여 년째 세금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과 수입 문제는 정부 물가 당국에서도 중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입 위험분석 절차는 수출국 요청 접수부터 수입 허용기준 고시·발효까지 모두 8단계를 거치는데, 기존에 수입이 허용된 품목 76건의 경우 8단계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8년 1개월이다. 현재 한국에 사과 수출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한 나라는 일본 등 11개국으로, 이 중 일본에 대해 5단계(위험관리방안 작성)까지 진행 중이지만, 병해충 위험관리에 문제가 있어 2015년부터 사실상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당초 한은이 농산물 수입 카드를 꺼내 든 건 금리를 조절하는 통화정책으로 물가상승률은 낮출 수 있으나 물가 수준 자체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장기간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2%대로 내려왔지만, 사과값은 1년 전과 비교해 80% 이상 오른 상황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은이 최근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사회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제언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가 한은의 전문성을 문제 삼으며 반박에 나선 것이라 그 파장에 이목이 쏠린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말에는 저출생 원인이 청년 세대의 경쟁 체제와 고용·주거·양육 불안에 있다는 보고서를 내 주목을 받았고, 올해 3월에는 고령화 추세에 맞춰 외국인 돌보미를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구분 적용하자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