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부실에 ‘낙수효과’ 강조한 반도체 대기업들, 시장선 “낙수는 허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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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대기업 혜택 규모 미국의 8분의 1, 농특세 등 기형적 구조도 여전
중소기업 중심 지원 이어가는 정부에 대기업들, "상층 지원해야 '낙수효과' 기대"
대기업 주장에 동조 않는 시장 "대기업 지원하면 낙수효과 발생한다는 확증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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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대기업이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 혜택 규모가 미국의 8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제되는 세금의 20%를 농어촌특별세(농특세)로 다시 내야 하는 등 기형적인 구조도 산재해 있다. 이에 대기업들은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한 만큼 대기업 지원을 통해 낙수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막상 시장의 분위기는 호의적이지 않다. 대기업 지원 정책이 낙수효과로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단 이유에서다.

부실한 국내 반도체 혜택, 보조금 지원도 없어

2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세액공제 혜택은 미국의 관련 혜택 대비 현저히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2026년 이전 시작한 첨단 반도체 건물(사무공간 제외)과 시설에 투자한 자금의 25%를 공제해 주고 있으며, 투자액의 10% 정도는 보조금으로 따로 지급한다. 미국에 10조원가량을 투자할 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총 3조원 정도인 셈이다.

반면 같은 금액을 한국에서 투자할 시 세액공제액은 3,080억원에 불과하다. 올해까진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제도’에 따라 대기업 반도체 투자금의 15%를 공제해 주지만 내년부턴 ‘신산업 투자세액공제’를 적용받아 공제율이 3%까지 낮아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건물 투자액은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점, 환급액의 20%를 농특세 명목으로 반납해야 하는 점 등 기형적인 지원 구조도 실질 공제율을 낮추는 요인이다.

보조금 지원책이 없단 점도 뼈아프다. 현재 주요국들은 반도체 지원에 보조금 지급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상술했듯 미국만 해도 현금 보조금을 적극 지원하고 있고, 일본은 8조원에 육박하는 재원을 들여 투자액의 최대 5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엔 한국도 R&D와 설비투자 등에 10조4,961억원의 조세 지출을 집행하겠다며 보조금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는 반도체뿐 아니라 바이오·이차전지 등 다른 첨단산업의 공제액까지 합친 액수다.

이렇다 보니 실제 반도체 업계에 투자될 자금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국내 반도체 세액공제율이 미국(25%)과 똑같다고 하지만 실제론 턱없이 낮다”며 “현금 보조금까지 감안하면 대규모 반도체 투자에 대한 미국의 총지원 규모는 한국의 세 배에 이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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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차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나누고 있다/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업계 불만 확산, “패권 경쟁 시대에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

이에 업계에선 정부에 연일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임에도 지원 방안이 너무 안일하단 것이다. 이전까지 정부의 지원이 중소기업 위주로 진행됐단 점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되는 반도체 산업계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란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세액공제율은 중소기업(25%)이 대기업과 중견기업(15%)보다 훨씬 높다. 산업은행이 반도체 기업에 빌려주는 정책자금 우대 금리 역시 대기업이 0.8%p인 데 반해 중소·중견기업은 1.2%p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세금 부담도 타국 업체 대비 높아지는 추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18~2022년 평균 법인세 부담률(법인세 비용÷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은 27.8%가량이었다. 동기간 삼성전자도 18.3%로 20%에 육박했다. 미국의 인텔의 부담률이 10.8%, 대만의 TSMC가 10.5% 정도임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경영계를 중심으로 “불합리한 조세 제도가 반도체 지원 효과를 반감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이유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 방향성이 여전히 중소기업 위주란 점이다. 지난 5월 반도체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할 당시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지원금 26조원 중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지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원안 중 R&D 세액공제 적용 범위 확대 등 정책은 대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반도체 대기업에 대한 정책적 소외는 여전하단 의미다.

지원에 따른 ‘낙수효과’ 강조하는 대기업들

대기업 지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소극적인 면을 탈피하지 못하자, 최근 업계에선 반도체산업 지원을 ‘대기업 특혜’로 인식하는 폐단부터 고쳐야 한단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을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닌 ‘낙수효과’를 낼 수 있는 거대한 폭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낙수효과란 대기업의 이익과 부유층 소득이 늘어나면 중소기업과 중산층·저소득층으로 돈이 흘러간단 의미의 경제이론이다.

다만 시장은 대기업 측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기업 지원 강화가 낙수효과로 이어질지 의문이란 시선에서다. 여기엔 대기업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는 허상일 뿐임을 경험적으로 학습한 이들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일례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최고 법인세율은 계속 낮아졌다.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단 의미지만, 막상 이 기간 한국경제 성장률은 하락을 거듭했다.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수출이 늘어난 이후에도 성장률은 하락했다. 대기업들이 노동규제 완화를 이용해 국내 노동력을 구조조정하고 세계화를 활용해 국내 중소 공급망을 탈피, 해외 공급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대기업에 유리하게 맞춰진다 해서 반드시 국내 산업계에 낙수효과가 발현되진 않는단 방증이다. 결국 외형 성장에만 집중하며 국내 경제 촉진 등 사회적 환원 작업에 소홀했던 대기업들의 원죄가 대기업 지원 정책에 대한 반감을 키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