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구리 전쟁에도 동정광 인프라 구축한 LS그룹, 정부도 재고 물량 확보 나섰지만 ‘중국 의존 리스크’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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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열풍에 구리 수요 급증했으나, 구리 공급은 '제자리걸음'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구리 가격 '흔들', "K-배터리 시장도 영향권"
인프라 구축 성공한 LS그룹, 정부도 자원난 출구전략 마련했지만 업계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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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광산 기업 BHP의 칠레 에스콘디다 광산/사진=LS MnM

LS그룹이 대규모 동정광 구매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구리 경쟁이 심화한 가운데 기업 차원의 구리 인프라 구축에 성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시장에선 구리 부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개발비용 급증 등 이유로 지난 10년간 구리광신이 거의 개발되지 않은 데다 주요 시장인 중국이 자원을 외교 수단으로 삼으면서 공급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이에 우리 정부도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시장은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현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핵심광물 부족 문제는 한국 시장의 영원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단 시선에서다.

글로벌 구리 경쟁 심화, LS그룹은 연달아 동정광 계약 체결

18일 업계에 따르면 LS그룹 비철금속 소재 기업인 LS MnM은 지난 4월 칠레 센티넬라 광산에서 나오는 동정광 100만t을 10년간 확보하는 계약을 맺었다. 앞서 지난달 호주 광산기업 BHP와 5년간 동정광을 매년 약 35만t씩 총 173만t을 공급받는 사상 최대 규모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연달아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동정광은 광산에서 채굴한 동광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농축한 동광석 분말로, 순도 99.99%의 전기동을 만드는 핵심 원료 중 하나다.

LS그룹의 거침없는 행보에 시장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구리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나 홀로 구리 인프라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구리는 열·전기 전도율이 높고 가공이 쉬워 쓰임새가 다양하다. 특히 친환경 전력망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확장, 전기차 저변 확산, AI 반도체 열풍 등이 잇따르면서 수요가 더욱 늘었다.

문제는 폭증하는 구리 수요에 비해 공급 속도가 너무 느리단 점이다. 실제 환경오염 우려와 개발비용 급증으로 지난 10년간 구리광산이 거의 개발되지 않았던 탓에 공급이 제자리다. 국제구리연구그룹도 올해 구리 공급량이 0.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맥킨지는 “전 세계 구리 소비량이 2023년부터 2035년까지 연평균 2.5%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공급 증가는 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2034년엔 잠정적으로 구리가 약 475만t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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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무기화 나선 중국, 구리도 ‘중국 리스크’

더 큰 문제는 주요 시장인 중국이 구리를 무기화하고 있단 점이다. 최근 들어선 구리 생산량 감산을 허용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례도 생겼다. 지난 3월 중국 대형 구리 제련업체들이 감산에 합의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 업체의 구리 감산에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구리 가격은 톤당 9,164.5달러까지 치솟으면서 11개월 최고가를 기록했다. 구리에도 ‘중국 리스크’가 드리운 것이다.

중국의 갑작스러운 감산에 시장에선 그러잖아도 위태로운 구리 공급망에 더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장 피해가 우려되는 건 K-배터리 시장이다. 구리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부품인 동박의 원재료 중 하나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한 대당 동박 약 40kg가량이 사용되며, 배터리 원가의 약 8%가 동박의 몫이다. 구릿값 상승에 배터리 원가가 올라가면 K-배터리 시장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단 의미다.

물론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나름대로 중국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동박에 판가 연동제를 적용해 구리 가격 급등에 동박 가격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직접적인 매출 감소는 피하기 어려우리란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구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데 고객사가 부담을 느껴 제품을 구매하지 않기 시작한다면, 배터리 업체 입장에선 사실상 탈출구가 없단 것이다. 이에 대해 동박 업계 관계자는 “구리 가격이 뛰면 제품 판가도 뛴다”며 “전기차 시장 침체로 가뜩이나 제품 수요가 안 좋은데, 가격이 인상되면 수요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출구전략 마련 나섰지만, “재고 물량 확보론 공급망 위기 극복 못 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출구전략 마련에 힘을 쓰고 있다. 글로벌 핵심광물 협력 강화를 위한 초석 마련도 속속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11일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서울 종로구 석탄회관에서 아우로라 윌리엄스 칠레 광업부 장관과 만나 양국 간 리튬, 구리 등 핵심광물 협력을 논의했다. 이번 행사에 대해 최남호 2차관은 “지난번 한-칠레 자원협력위원회를 이어 한-칠레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개최됨에 따라 양국 간 핵심광물을 위한 공급망 협력이 한층 더 강화됐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칠레의 리튬, 구리 등 핵심광물의 공급망 다양화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 2월엔 조달청이 2024년 비축사업계획을 확정하며 “알루미늄, 니켈, 구리, 아연, 주석, 납 등 비철금속을 2027년까지 60일분 확보하고 긴급수급조절물자는 올해 중으로 60일분 이상 확보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선 올해엔 비축재고 늘리기에 집중한 뒤 이후 62일인 니켈은 70일분으로, 61일인 알루미늄은 65일분으로, 43일분인 구리는 50일분으로 재고 목표를 더욱 확대한단 방침이다. 연간 공급계약 방식을 도입해 국내외 비철금속 공급사와 연 단위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도모하겠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임기근 조달청장은 “공급망 관리는 산업생존의 문제”라며 “탈세계화 기조 등으로 공급망 위기가 고착해 리스크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힘줘 말했다.

다만 시장에선 여전히 부족하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핵심광물 확보에 정부의 역량이 집중되고 있긴 하지만, 칠레와의 협력 강화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인 데다, 조달청이 마련하겠단 재고 물량의 경우 위급 상황 발생 시 금세 사라질 게 뻔하단 것이다. 특정 국가에 자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단 점도 문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중국 공급망 의존도는 핵심 원자재 등을 중심으로 19%로 주요국(9%)의 두 배를 상회하고 있다. 핵심광물 수입 의존도 역시 80%에 달하는 실정이다. 당장의 자원 수급보단 중장기적인 수입처 다변화를 먼저 꾀할 필요가 있단 목소리가 시장을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