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풍랑 막바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열어둔 한은, 문제는 ‘인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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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인플레이션 잦아들었지만 섣부른 인하는 금물"
기준금리 인하 앞둔 미국, 우리나라도 뒤따를까
고금리 장기화에 가계·기업 비명, 은행권 리스크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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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플레이션 대응전이 마지막 구간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내놨다. 금리 인하 여건 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본격적으로 연내 기준금리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피벗(통화 정책 전환) 가능성, 국내 경제 주체들의 부실화 위기 등이 차후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가중할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인플레이션 정점 지났다?

12일 이 총재는 이날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식에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기준금리를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인상하던 때의 거친 풍랑은 이제 어느 정도 잦아든 듯하다”며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세부 잠재 위험 요인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 위기의 정점은 지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월 3.1%, 4월 2.9%, 5월 2.7% 등 점차 하락하는 추세다. 각종 정부 기관 역시 물가 정점이 이미 지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상승률이 올해 2.3%, 내년에는 2%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2.4% 선에 머무를 경우에 한해 금리 인하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지금도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여러 경제 주체가 겪고 있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 소득 감소, 높은 생활 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며 “섣부른 완화 기조로 선회한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짚었다.

연내 금리 인하 시사한 미국

한편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무조건적인 금리 동결 대신 금리 인하 여건 달성을 강조,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중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피벗에 발맞춰 한국은행 역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중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한 상태다. 12일(현지시간)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5.25~5.50% 수준에서 동결했다. 점도표(금리 전망을 점으로 표시한 도표)를 통해 제시한 올해 말 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연 5.1%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를 고려하면 사실상 올해 내로 한 차례(0.25%p) 금리를 하향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금리 동결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가장 최근의 인플레이션 지표는 올 초보다 나았고 2% 목표를 향한 추가 진전이 있었다”고 진단했는데 이 같은 파월 의장의 발언도 금리 인하가 가까워졌다는 낙관론에 불을 붙였다. 이에 시장 참가자들도 연내 금리 인하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CME Fedwatch)에 따르면, 금리 선물 투자자들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전망치는 9월 기준 70%, 11월 기준 80% 수준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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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내몰린 가계·중소기업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고통받는 경제 주체들의 목소리가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가중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도 그럴 것이 2021년 8월까지만 해도 0.75% 선에 그쳤던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이듬해인 2022년 8월 2.50%로 3배 이상 치솟았다. 거듭된 인상 행보 끝에 지난해 1월 3.50%에 도달한 기준금리는 지금까지 동일한 수준을 유지 중이다.

불어난 금리 부담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영끌족’을 비롯해 영업이익이 적은 중소기업 등을 한계로 몰아넣었다. 이자 상환에 난항을 겪는 차주가 늘며 은행권 전반의 ‘깡통대출(무수익여신)’ 피해가 급증한 것이다. 무수익여신은 차주로부터 원금은 물론 이자조차 받지 못해 수입이 전혀 없는 대출이다. 보통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채권재조정·법정관리 등으로 원리금 상환이 멈춘 대출 등이 무수익여신에 포함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지난 1분기 말 무수익여신은 2조9,7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7.9%(2,175억원) 증가했다. 문제는 무수익여신이 고정이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여신보다 손실 우려가 큰 ‘악성 채권’이라는 점이다. 사실상 고금리로 인해 가중된 가계·기업의 부담이 금융권의 부실 리스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