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거야(巨野) 정국 속 ‘금산분리’ 완화 재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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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김 위원장 취임 일성으로 '금산분리' 강조
당시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타격 불가피 지적
법 개정 사안으로 실제 국회 통과 가능성 희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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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다시 시동을 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비금융업 진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그동안 제기됐던 골목상권 침해 우려 등에 대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의 시간을 거쳤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은행법 개정이 필요해 여야 대치 정국 속에서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위, 금융사의 자회사 투자·부수 업무 범위 등 검토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 은행권 관계자들을 만나 금산분리와 관련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의 결합을 제한하는 규제로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시중은행의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금융지주사와 은행도 비금융사의 지분을 각각 5%와 15%까지만 소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즉 산업자본이 은행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혁신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제한돼 있다.

금융위는 세계적으로 산업과 금융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e)’ 현상이 심화하면서 금산분리 규제가 금융 혁신을 저해한다고 보고 금융지주와 은행의 기업 투자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2022년 7월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취임 일성으로 금산분리를 강조한 바 있다. 취임사에서도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과거의 전통적 틀에 얽매여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밝히고 취임 직후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출범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해 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대상으로 현재 금융사의 자회사 투자 허용과 부수 업무 범위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현행 포지티브 규제의 해석을 확장하는 방식부터 ‘진출 불가 업종’만 빼고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모두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사의 자회사 투자 허용 기준을 현행 금융업종 관련성 외에 효율성 기준 등을 새로 도입할 것인지, 금융사의 부수 업무 범위를 현행 고유업무와 유사한 업무에서 확대할 것인지를 논의하겠다는 취지다.

비금융사 금융업 진출은 부정적, ‘금산분리’ 단어엔 신중

앞서 지난 4월 1일 김 위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연합회장과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 행장, 광주은행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금융사의 비금융 사업 진출을 위한 규제 완화가 논의됐다. 은행들이 비금융 데이터를 결합하거나 비금융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의 금산분리’ 완화가 핵심 의제였다. 당시 은행들은 빅테크의 금융 플랫폼 진출로 업권 간 경계가 흐려진 상황에서 사업 모델 다각화를 위해 금융·비금융 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비금융사들의 반발을 우려해 ‘금산분리’라는 단어 사용에는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금융사가 비금융업종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비금융사도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월 금융위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 ‘KB리브모바일’을 은행의 부수 업무로 허용한 것을 두고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가 생태계 교란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금융위는 비금융사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의 길은 열어주되 비금융주력자가 금융사업에 진출하는 장벽은 여전히 높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사를 보유하면 ‘자금조달’이 수월해질 가능성이 높아 너나 할 것 없이 금융업으로의 진출을 꾀할 것이기 때문에 자칫 그동안 규제를 통해 세밀하게 정비됐던 국내 금융시스템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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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월 16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 원에서 열린 ‘벤처기업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2년 전 은행의 문어발식 확장 우려에 추진 시기 연기

그러나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년 전 김 위원장이 금산분리의 빗장을 풀겠다고 선언할 당시에도 막대한 자금력과 영업력으로 무장한 은행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할 경우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결국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따져보기 위해 추진 시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게다가 금산분리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금산분리를 위한 은행법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거야(巨野)를 이룬 민주당 강령에는 “금산분리 원칙을 견지해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고 경제적 피해는 억제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산분리 완화 반대를 주장해 왔던 박홍배 전 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서 입성한 점도 법 개정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하반기 규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어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수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금산분리와 같은 대형 이슈를 제안할 필요가 생겼단 것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최근 공매도 금지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엇박자를 내면서 지난해 말부터 교체 대상 예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