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후유증 앓는 빌라 시장, 급격한 침체에 ‘역전세’ 악순환 우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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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기 접어든 빌라 시장, 전세 시세 하락에 '역전세'도 속출
전문가들도 '빌라 시장 붕괴' 우려, "무주택 서민 어려움 가중될 것"
빌라 재건축 의견↑, "재개발·재건축으로 시장 유입 활성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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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후유증으로 빌라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선 인허가가 아예 없거나 역전세(기존 보증금 대비 시세가 하락한 전세 거래)가 속출하는 등 시장이 붕괴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부동산 업계에선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활용해 빌라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개발에 쏠린 시장의 관심이 빌라 시장에까지 확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도모해야 한단 것이다.

빌라 인허가 물량 ‘반토막’, 전세 사기 후유증 여전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4월 전국 빌라 인허가 물량은 3,463가구로 2년 연속 줄었다. 동기간 2022년 1만5,951가구, 지난해 6,435가구가량이 인허가 물량으로 나온 데 반해 반토막이 난 셈이다. 서울 지역 빌라 인허가도 부쩍 줄었다. 서울의 1~4월 인허가 물량은 2022년 6,516가구에서 2023년 1,495가구로 급감했고, 올해는 827가구로 1,000가구를 밑돌기까지 했다.

5대 광역시의 1~4월 인허가 물량은 2022년 809가구에서 2023년 215가구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단 28가구에 불과했다. 2년 사이 90% 이상 쪼그라든 것이다. 광주와 울산의 경우 1~4월 빌라 인허가 물량이 0가구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방 광역시에서 1~4월 기준 인허가 물량이 0가구를 기록한 건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이처럼 빌라 시장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건, 2022년 말 일명 ‘빌라왕 사태’로 불리던 전세 사기 사건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빌라가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탓이다.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빌라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든것이다. 이렇다 보니 빌라는 경매 시장에서도 외면받는 분위기다. 법원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매 빌라 낙착률은 10.60%에 그쳤다. 2020년 12월 낙찰률이 43.28%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전성기 대비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시세 하락에 역전세 증가, ‘악순환 고리’ 형성됐다

문제는 빌라 전세 시세가 하락하면서 빌라 시장에 역전세가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단 점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지난 2022년 1~5월 전세 거래 4만2,546건과 올해 동기간 동일 주소지의 전세 거래 9,653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46%(4,437건)가 역전세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해 보증보험 가입 한도를 공시가격의 126%로 통제하는, 이른바 ‘126% 룰’을 적용하면서 보증금 한도가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제한됐다”며 “새 임차인을 받더라도 보증금을 충당할 수 없고, 전세금 반환 대출 한도마저 제한되면서 역전세가 심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지역의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떨어지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 임대차 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지역 연립·다세대(빌라)의 전세가율은 평균 68.5% 수준이었다. 2022년 12월 78.6%에서 1년 만에 10.1%p 하락한 것이다. 동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62.5%에서 55.5%로 7%p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낙폭이 더 크다. 전세 사기 우려로 빌라 전세 수요가 줄면서 전셋값이 내려간 반면 월세 수요는 오히려 커진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방에선 전세가율이 100%를 넘어 깡통전세로 전락한 곳도 적지 않았다. 한국부동산원 임대차 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따르면 지난 4월 전남 광양시 빌라의 전세가율은 104.0%를 기록하며 100%를 넘어섰다. 전세가율이 100%를 넘으면 집값보다 전세 보증금이 더 많아 집을 팔아도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로 분류한다. 실제 지난 4월 광양시의 전세보증금 사고 비율은 전체의 30.8%(30건)에 달했다. 

강원도 역시 역전세 위험 경고가 커졌다. 강원도 평균 전세가율은 83.8%로 80%를 넘겼고, 강릉시는 전세가율이 90.2%로 가장 높았다. 경북지역도 전체 전세가율이 평균 80.4%를 기록하며 빨간불이 켜졌다. 경북에서 높은 수준의 전세가율을 보인 대전시 대덕구와 서구는 각각 93.1%, 89.5%로 90%를 넘거나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담당해 온 빌라 시장이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기 제기되고 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빌라를 지어서 안 팔리면 시공사가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데 매매뿐만 아니라 전세도 수요가 없다 보니 ‘빌라 지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져 있는 것”이라며 “아파트 시장 보완재로서 빌라 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시장이 붕괴하면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간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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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에 이목 집중, 빌라 시장의 출구전략은

빌라 시장 침체가 가속하는 가운데, 최근 부동산 업계 일각에선 “빌라 시장 부흥을 위해 재개발·재건축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재개발·재건축에 쏠린 관심을 빌라 시장에까지 확대해야 한단 것이다. 실제 재개발 사업이 확정된 이후 정비구역 일대 빌라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는 이미 이전부터 있어왔다. 49층 재건축이 추진 중인 서부이촌동 제1구역 일대 대지지분 13.2㎡ 빌라 매물이 9억원, 3.3㎡당 2억2,500만원에 나온 게 대표적이다.

시장 역시 “빌라도 적극적인 재건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건축을 통해 전세 사기 후유증을 벗을 수 있으리란 시각에서다. 정부가 부동산 침체 대책을 내놓으면서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이 같은 인식이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앞서 지난 1월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재개발 사업 시 노후도를 충족하는 주택 비율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전까지는 30년 넘은 건물이 전체의 3분의 2(66.7%) 이상이어야 노후도 요건을 충족해 재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대책 마련 이후 요건이 60%까지 완화됐다. 재정비촉진지구 내 사업의 경우 50%까지 낮아졌다.

이에 모아타운을 신청했지만 기준 미달로 선정되지 못한 구역도 인접한 빌라나 주택까지 흡수해 면적을 넓히는 등 방식으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빌라와 단독주택이 몰린 강서구 화곡동과 송파구 삼전동, 방이동, 양천구 목4동 등 빌라촌과 노후거주지역에 급격히 이목이 쏠린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대책이 외면받던 빌라 시장에 새로운 유입을 낳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