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의무화’ 띄운 정부, 업계선 영세 사업장 부담 등 역효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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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단계적 의무화, 상시 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 우선 도입
영세 사업장 부담 우려 확산, "자율 도입 유도할 필요 있어"
공적연금 형평성 논란도 도마 위로, "공적연금 일원화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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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부터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근로자가 퇴직급여를 연금 방식으로 받도록 유도해 퇴직연금을 국민연금과 함께 핵심 노후 대비 수단으로 삼겠단 취지지만, 일각에선 불안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단 시선에서다.

퇴직연금제도 단계적 의무화 본격 시동

1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오는 20일 퇴직연금 민간사업자와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퇴직연금제도 도입 관련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르면 회사는 직원에게 퇴직급여를 주기 위해 퇴직금이나 퇴직연금 중 한 개 이상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2012년 이후 설립된 회사는 퇴직연금을 의무 도입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설립된 회사는 두 제도를 임의로 선택해 운영할 수 있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회사가 보유금으로 일시 지급해 회사 재무 상황이 나빠졌을 때 체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2005년 도입한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적립한 돈을 운용하는 것이니만큼 체불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문제는 적립금 납입 부담 등을 우려해 많은 기업이 퇴직연금 도입을 주저한다는 점이다. 실제 2022년 말 퇴직연금 가입 사업장은 전체의 26.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영세기업 부담 등을 고려해 퇴직연금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관련 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도입하고 30인 이상~100인 미만은 법 시행 후 2년 이내, 상시근로자 5명 미만은 6년 이내로 순차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퇴직연금 제도를 개편함으로써 국민연금과 함께 퇴직연금을 국민들의 노후 대비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겠단 게 정부의 최종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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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의무화, 중소·영세 사업장의 부담 커질 수도”

다만 정부의 계획에 대해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단 것이다. 퇴직연금은 사내에 적립하는 퇴직금과 달리 사용자가 퇴직급여 재원을 금융회사에 적립·운영하고 근로자 퇴직 시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퇴직급여를 운용하던 기업이 퇴직연금으로 시스템을 전환할 경우 내부 기금을 외부로 빼내야 한단 의미다. 여기서 유동성이 부족한 업체는 대량의 내부 기금을 갑자기 외부로 빼내면 차입금이 늘고 위기 발생 시 대응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현재 영세 사업장의 퇴직연금 가입 비율은 상당히 낮은 상황이다. 실제 300인 이상 사업장 중 70.5%가 퇴직연금에 가입한 반면 5~9인 사업장의 도입률은 30.0%, 5인 미만 사업장은 11.9%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낮은 상황에서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을 만들고 가입을 서둘러 강제하면 역효과만 클 것”이라며 “자율 도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적연금 통합 목소리↑, “형평성 논란부터 해결해야”

퇴직연금 의무화를 진행하기 전 공적연금 일괄 통합을 먼저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적연금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적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단 시선에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3월 발표한 ‘공적연금개혁과 재정전망 IV’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이 9%일 때 공무원연금과 사적연금의 보험료율은 18%였다. 지급률은 국민연금이 1%(소득대체율 40%)였으며,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이 1.7%로 설정됐다. 공무원 노조를 중심으로 직역연금이 불이익을 받고 있단 주장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을 위해 공적연금 일원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청년세대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지난 2월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연금 이해관계 대상 2차 공청회’에서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이 완전한 통합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직역연금은 2015년 개혁을 통해 국민연금의 재정 재분배적 성격인 균등급여적 연금 성격이 도입됐고 혜택의 규모 관점에서도 국민연금과 혜택 규모가 비슷해졌다”며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제도적 틀은 합치되 재정을 분리해 운영한다면 형평성 논란은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