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도시’로 전락한 홍콩, ‘홍콩 ELS 사태’ 아래 불안정성도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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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달리는 홍콩증시, 국제금융센터지수도 2년 연속 싱가포르에 밀려
중국 간섭에 해외 기업 유출 가속화, "홍콩의 중심 언어는 이제 중국어"
홍콩 추락에 덩달아 떨어진 홍콩 ELS, "중화권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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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꼽히던 홍콩이 명성을 잃고 있다. 중국의 간섭이 늘면서 해외 기업 유출이 심화한 영향이다. 특히 해외 기업이 빠져나간 자리에 중국 본토 기업이 들어옴에 따라 홍콩은 영어 중심의 도시에서 중국어 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사실상 홍콩이 광둥성의 한 소도시 수준으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정학적 갈등 몰락한 홍콩, 증시도 4년 연속 하락세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홍콩은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미중갈등,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 홍콩 탄압 등 지정학적·정치적 요인 등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중국 부동산 시장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만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해왔지만,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과 헝다 등 주요 부동산 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주가가 전 고점 대비 90% 이상 폭락했다.

이에 홍콩증시는 세계 주요 증시 지수 중 최악을 달리고 있다. 특히 홍콩을 대표하는 항셍지수는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연속 하락했다. 이는 1964년 7월 항셍지수가 처음 산출된 이후 가장 긴 약세장이다. 홍콩 증권거래소도 인도에 추월당했다. 세계거래소연맹(WFE)이 집계한 세계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순위에서 홍콩은 7위(2022년 12월 기준)에서 8위(2024년 1월)로 밀렸고, 인도는 종전 8위에서 6위까지 성장했다.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도 2년 연속 싱가포르에 밀려나 아시아 2위, 세계 4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일국양제’ 표방했던 중국, 홍콩 성장의 발판

그간 홍콩이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의 영향이 컸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아시아 금융센터 역할을 해온 바 있다. 이후 중국에 반환될 시기가 도래하자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지만,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금융산업계에서 꾸준히 이름을 떨쳤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확실한 지위를 구축한 홍콩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이후 홍콩은 자유로운 외환 거래, 유연한 노동시장, 낮은 세율과 최소한의 규제 등 이점 아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특히 해외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중국 기업들이 줄을 서면서 단숨에 세계 1위 IPO 시장으로 등극했다. 이는 금융이 홍콩 GDP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경제 축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중국인 동시에 중국이 아닌’ 지위를 적극 활용해 홍콩만의 특수한 경쟁력을 창출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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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섭 강화에 추락 가속화

그러나 홍콩을 나락에 떨어뜨린 것 역시 중국이었다. 홍콩 내 민주화 운동의 바람이 끊이지 않자 중국 정부는 결국 홍콩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를 강화했다. 과도한 개입도 일삼았다. 중국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빌미로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바 있고, 간접선거를 강화하는 선거제 개편을 통해 행정·입법부를 모두 친중파로 채우기도 했다.

지난 3월부턴 반역·내란 등의 혐의에 대해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기본법 23조’를 시행했고, 지난달 30일에는 홍콩 법원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기소된 민주화 운동가 47명 중 14명에게 국가 전복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홍콩의 금융산업만이 갖고 있던 강점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해외 기업의 유출이 이어진 것도 홍콩의 추락을 가속했다. 실제 중국 리스크가 커졌다고 판단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홍콩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최대 연금기금 운용사 중 하나인 온타리오 교사 연금이 홍콩 본부를 해체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국적 회사들도 같은 이유로 아시아 시장의 중심지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제너럴모터스, 다이슨 등 다국적 기업 4,200곳이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 본부를 새로 마련했다.

이렇다 보니 이전까지 홍콩을 아래서 받쳐주고 있던 글로벌 언어 ‘영어’도 홍콩에서 점차 사라지는 모양새다. 외국 기업이 떠난 자리를 중국 본토 기업이 채운 영향이다. 경제·산업 분야에서도 중국 본토의 입김이 강해지다 보니 오늘날의 홍콩은 영어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게 더 급한 상황이 됐다. 시장 일각에서 “홍콩이 광둥성의 한 소도시 수준으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홍콩 ELS 사태 단초 되기도

문제는 홍콩의 추락이 해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단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대규모 손실 사태다. 홍콩 ELS가 원금 손실이 난 건 상품이 판매된 2021년 이후 홍콩H지수가 계속 하락한 탓이다. 실제 2021년 상반기 1만~1만 2,000원 선이던 H지수는 2022년 10월 말 5,000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발생한 손실은 총규모 8조4,100억원에 약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홍콩 ELS 사태가 국내에서 본격적인 논란으로 불거진 건 불완전 판매 문제 때문이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이번 사태는 홍콩, 나아가 중국 관련 투자상품의 불안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 중 하나라 할 만하다. 중화권이 지정학적 갈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음이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몰락 과정을 통해 중화권 전반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는 결과가 도출됐다는 평가가 시장을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