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예산 한 데 모은다” 방향 전환 시도하는 정부, 정책 실효성 갖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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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위, 저출생 대책 특별회계 신설 추진
각 부처에 흩어진 예산, 집행 방향도 '애매모호'
"결혼·출산은 약점이다" 한국 사회의 기형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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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고령위)가 10조원 규모의 저출생 대책 특별회계 신설을 추진한다. 다수의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분산돼 있는 저출산 예산을 통합, 효과가 검증된 저출생 대책에 재원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차후 정부의 저출산 지원 정책에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흩어진 저출산 예산 모으기

29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저출산고령위는 특별회계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저출생 종합대책을 다음 달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특별회계란 정부가 특정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별도로 마련하는 예산이다. 일반회계 예산을 특별회계로 분리할 경우, 특정 재원을 정해진 사업에만 쓸 수 있어 재정 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현재 저출생 대책에 관여하는 정부 부처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국세청 등 7곳에 달한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편성하고 나머지 부처는 예산을 집행한다. 보건복지부는 △아동수당 △부모급여 △자녀양육수당을, 고용노동부는 △단축근무 △육아휴직 등을 관할한다. 아이돌봄서비스는 여성가족부, 다자녀특별공급은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부부의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일 때 18세 이하 자녀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자녀장려금은 국세청이 담당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위는 차후 특별회계를 통해 비효율적인 저출생 대책을 걷어내고, 보다 실효성 높은 대책에 정부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종 저출산 지원용 현금 보조를 통합하고,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17세까지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을 현행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상향하는 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방향 잃은 저출산 지원책

정부의 비효율적인 저출산 예산 집행에 대한 비판은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약 380조원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해당 기간 이렇다 할 출산율 제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4년 1분기 0.76명까지 급감했다. 곳곳에서는 올해 연간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로 0.6명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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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출산 예산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급여·공공주택(주거지원)·반값등록금 등 저출산 현상과 비교적 연관성이 적은 사업이 저출산 대응 예산에 포함되며 예산 규모 자체가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간접적인 지원 사업에 투입되는 돈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집계되다 보니, (저출산 정책의) 조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실질적으로 정부가 저출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일갈했다.

정부가 첫만남 이용권과 부모급여, 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목된다. 현금성 지원은 결국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일-육아 병행 지원 등 실질적인 출산율 제고 효과가 입증된 저출산 대응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저출산, 한국 사회 구조부터 고쳐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 설립자 겸 선임연구원은 저출생 문제 해소를 위한 정책 전략을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프레이는 아이비엠 엔지니어 출신의 미래학자로, 2010년대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미래 강연 활동을 한 바 있다.

프레이는 저출생 흐름을 고착시킨 요인으로 △치열한 취업 경쟁, 과다한 주거비 부담 등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경제적 불안정 △과다한 노동 시간, 양성 불평등 등 사회·문화적 압박 △치열한 교육 경쟁 시스템 등을 지목했다. 한국의 청년층이 사회 구조적 압박에 시달리며 결혼·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분석이다.

실제 청년들의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은 꾸준히 악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저출산고령위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으로 진행한 ‘저출산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49세 이하 응답자의 49.0%는 ‘향후 자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20대는 △무자녀 생활의 여유 및 편함(40.3%) △아이 양육 및 교육 부담(24.3%) △경제적 불안정(22%) 등을, 30대는 △경제적 불안정(38.8%) △아이 양육 및 교육 부담(15.5%) △무자녀 생활의 여유 및 편함(7.9%) 등을 출산 기피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 속 결혼과 출산이 개인의 ‘약점’으로 둔갑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