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는 농협금융, 사외이사 학계 쏠림 여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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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 중 학계 인사 67%
농협은행은 사외이사 전원을 교수로 선임
일부 자회사는 '전직 농협' 출신 인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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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 지배구조 선진화’ 등을 담은 2024년 업무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사진=금융감독원 유튜브

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이사회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농협금융지주의 사외이사가 교수 직군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이른바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 계열사의 경우 전·현직 임직원이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농협금융그룹의 사외이사 구성 지적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사외이사진 67%가 현직 교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은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지난 26일 “은행권의 운영 결과를 점검한 결과 전반적으로 모범관행의 취지에 맞게 개선되고 있으나 일부 은행의 경우 여전히 사외이사가 학계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금감원이 지적한 ‘사외이사가 학계에 편중된 일부 은행’은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금감원에 보고된 농협금융지주의 사외이사 현황에 따르면 전체 6명의 사외이사 중 교수 직군은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길재욱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등 총 4명으로 집계됐다.

농협은행도 사외이사 4명 중 3명이 현직 교수로 △함유근 건국대 경영학 교수 △차경욱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등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조용호 이사도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겸직하고 있어 사실상 사외이사 전원이 학계 인사다. 이에 대해 농협은행은 “현재 사외이사 추가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해당 비율을 낮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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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뱅크

교수 직군, 전·현직 범농협 인사 비중 높아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뿐 아니라 농협금융그룹의 전 금융 계열사로 범위를 넓혀봐도 사외이사진의 학계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실제로 농협금융지주 산하 계열사 12곳의 등기임원 중 사외이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42명의 절반인 21명이 학계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계열사별 비중을 보면 NH투자증권의 학계 사외이사 비중은 80%, 농협생명은 75%, 농협손해보험 25%로 특히 증권·보험 등 자산 기여도가 큰 계열사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난해 말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 최종안’이 나온 이후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가 마무리됐음에도 여전히 학계 출신으로 사외이사진이 꾸려졌다”며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에 자산 규모가 작아 ‘금융사 지배구조법’이 적용되지 않는 계열사들은 전·현직 범농협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례도 많았다.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설립된 금융회사는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경우 금융사 지배구조법의 적용을 받아 최대 주주 법인·계열사의 상근 임직원은 3년 동안 금융사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이사회의 독립성 유지를 위한 장치다.

일례로 NH농협캐피탈의 사외이사 3명 중 정명화 이사는 옥종농협 조합장 출신이다. 정 이사는 이병택 전 이사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올해 주총을 통해 신규 선임됐다. 이병택 전 이사 역시 전 농협중앙회 안성시지부 지부장이다. 또 NH농협리츠운용은 이윤배 전 농협손해보험 대표가 사외이사로 있다. 이외에도 NH벤처투자, NH선물, NH헤지자산운용 등도 농협 출신이 비상근 감사로 등기임원에 선임됐다.

금융당국 요구와 달리 농협금융은 사외이사 줄여

앞서 농협금융지주는 지난 3월 29일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기존 사외이사 2명을 재선임하고 1명이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남병호 사외이사와 함유근 사외이사가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서 사외이사는 총 7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이는 금융당국의 이사회 독립성·다양성 확보 요구에 응답하며 사외이사의 수를 늘린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여타 금융지주사와는 다른 행보다.

이에 금융권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형적 지배구조에 기인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과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간 갈등, 금감원의 농협금융 지배구조 개선 압박 등을 염두에 둔 농협중앙회의 계산된 움직임이란 해석도 나온다.

특히 강호동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박흥식 광주비아농협조합장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한 점은 농협금융 이사회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많다. 비상임이사는 농협금융 사외이사와 자회사 CEO 후보를 추천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핵심 구성원이기도 하다. 눈여겨 볼 부분은 이석준 회장이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소속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사외이사나 자회사 CEO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석준 회장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의 갈등 속에서 임추위 운영 시 강호동 회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만 이석준 회장의 의견은 반영되기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농협금융은 추천 후보의 자진 사퇴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외이사의 수가 줄어들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새 사외이사를 물색 중이며 이달 중 1명을 추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규정상 이사회 구성원 수가 6명이어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