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절차 소요 기간, 지방선 최대 6배? 지역별 편차에 ‘원정 파산’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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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 소요 기간 평균 4.3개월-제주 11.5개월, 편차 '2배 이상'
도산전문법원 들어선 서울, 전문성 차이가 사건 처리 속도 나눠
서울 원정 파산에 시름 앓는 한국, "영국 사례 참고해 제도 개선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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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고 선고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서울에 비해 최대 6배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로 인해 지방 채무자들의 ‘원정 파산’ 사례가 급증했단 점이다. 파산 기간에 지역별 편차가 큰 기형적 구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지역별 편차 큰 파산 절차 기간, “원정 파산 늘 수밖에”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에서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것과 타지방에서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데 지역 간 편차가 2배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를 서울회생법원으로 개편하면서 도산전문법원이 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일반 법원은 2년마다 법관 이동이 있는 데 반해 회생법원은 3~4년 동안 근무를 지속한다.

즉 장기간 도산사건만 처리하면서 도산사건 및 채무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객관적인 사건 처리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단 것이다. 타지역 대비 서울회생법원에 파산부가 많은 것도 파산절차 처리 속도를 가속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지역별 편차가 크다 보니 지방 채무자들 사이 지방 법원을 기피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단 점이다. 지방 채무자들이 서울로 원정 파산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빚 독촉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위장전입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는 “사건 접수 한두 달 전에 서울로 이사 오거나 여러 채무자가 한 사무장의 주소지를 적어 낸 사례가 많다”며 “처리 속도에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기형적 구조가 원정 파산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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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평균 4.8개월인데, 강릉은 회생까지 9.4개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3년 6월 기준 전국 지방법원과 회생법원의 개인회생 사건의 접수 시부터 개시 결정 시까지 평균 4.8개월이 걸린 데 반해 △강릉지원은 9.4개월 △제주지법은 9.3개월 △전주지법은 7.7개월 △춘천지법은 7.6개월로 평균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4.7개월)과 비교하면 약 1.6~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개인파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개인파산 사건의 접수부터 선고 시까지의 기간은 전국 평균은 4.3개월이었으나, △제주지법은 11.5개월 △창원지법은 10.9개월이 걸려 전국 평균의 2배 가까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법조계에선 지방 법원의 개인회생·파산 절차가 실질적인 효용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치게 지연된 탓에 회생 절차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법원 관계자는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의 경우 당사자를 빠르게 구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10개월 가까이 걸리는 건 개인회생 제도의 도입 목표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원정 파산 사태와 ‘닮은꼴’

한편 지방 채무자의 서울 원정 파산 사례를 두고 일각에선 과거 영국의 원정 파산 사태를 떠올리기도 한다. 비슷한 지점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브렉시트 전 영국은 기업 파산법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해 기업들의 원정 파산 사례가 매우 잦았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독일과 그리스 등지의 회사가 편법으로 영국에서 파산 절차를 밟음으로써 채권단 처리 등에서 혜택을 본 데 ‘파산 관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편법 파산 사례가 늘다 보니, 일각에선 “런던이 유럽의 파산 처리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런던 소재 구조조정 전문 법률회사 캐드월래더 관계자는 당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파산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라면서 “특히 골치 아픈 채권단을 털어버릴 수 있는 것도 파산하려는 기업에는 매력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이 절차가 쉬운 네바다주로 가서 이혼하는 것과 유사하다”며 “관련 법의 허점이 손질되지 않는 한 이런 편법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 간 원정이냐 내부 원정이냐의 차이일 뿐 과거 영국의 폐해는 서울 원정 파산 실태와 거의 흡사한 상황이다. 영국 사례를 살피고 법 제도 개선을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를 중심으로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