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보호 상법 개정 추진 본격화, 재계선 “시세 차익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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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 포함? 소액주주 보호-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
상법 개정안 본격 궤도, 윤 대통령·야권도 "주주 권익 강화" 일관된 목소리
반발 쏟아내는 재계, "소액주주 목소리만 커지면 기업가치 훼손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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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액주주 등에 대한 권익 침해 문제를 해소하겠단 취지지만, 재계에선 주주들의 소송 남발로 중장기적인 가치 훼손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선 상법 개정안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일부 소액주주들의 꼼수로 전락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히려 심화할 수 있단 의견도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이복현 금감원장 “소액주주 권리 법제화해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법무부 및 금융위원회와 공청회를 거쳐 의견 수렴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28일 열린 자본시장 밸류업 국제 세미나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법제화를 통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관련 상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지 4개월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 운영에 대한 책임만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사회가 소액주주에 불리할 수 있는 물적분할·합병이나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전환사채 발행 등을 의결해도 회사에 손실을 주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까지 포함하게 되면 앞으로는 소액주주가 손해를 볼 경우 이사 결정에 법적 책임을 물을 근거가 생기게 된다. 소액주주의 권리가 본격적으로 법제화되는 셈이다.

정부-야권 한목소리, 상법 개정 실현되나

상법 개정에 역점을 둔 개혁 시도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실제 21대 국회에 똑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다른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21대 국회 임기가 29일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총선 등을 거치며 정국이 다소 혼란했던 데다 법무부가 상법 개정에 회의적 입장을 보이는 등 정부 노선도 구체적이지 않았던 탓에 추진 동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상법 개정이 실현되려면 22대 국회에서 개정안 발의라는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 때 상법 개정을 공약한 바 있고,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도 민주당 소속 박주민·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차원에서 상법 개정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이 대표는 소액주주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사의 구성 과정과 역할, 책임 등이 대주주에게 맞춰져 있다”며 “상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힘줘 말했다.

최 부총리, 이 금감원장 등 정부 인사들이 연이어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나서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으로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역설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목소리에도 덩달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라는 주제로 개최한 네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기관장-대통령-야권의 목소리가 ‘상법 개정’이란 하나의 줄기 안에 모이기 시작한 만큼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정부는 6월 중 공청회를 열어 법 개정과 관련한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의원입법 방식을 통해 개정안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초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법무부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는 분위기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공청회 등을 통해 경제계와 학계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며 “여러 방향으로 법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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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선 반발 목소리, “배임 소송 남발 우려 커”

문제는 경제계의 반발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재계는 상법 개정에 대해 “소액주주가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고소·고발이 남발해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 차원의 의사결정이 소액주주들에 의해 어려워질 수 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형법에 업무상 배임죄가 있는 국내 현실에서 이사 역할 축소, 단기 위주 경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며 “이는 결국 장기적인 기업가치 훼손을 불러와 회사와 주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대주주를 제외하더라도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 수개월 투자하는 스윙투자자, 단타매매를 하는 투자자까지 주주가 천차만별”이라며 “신규 투자를 한다고 하면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의사결정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외 회사와 주주의 법인격(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별개로 보는 상법 체계를 뒤흔들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추가하면 회사와 주주가 동일하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소액주주에 휘둘리는 양상이 짙어진 상황에서 권리 강화를 법제화할 경우 부작용만 심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 아마추어리즘으로 치부됐던 소액주주연대 운동은 점차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회계사와 변호사 등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논리로 무장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무시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의 힘이 막강하다 보니 최근 주총 현장에선 경영권 분쟁 국면 아래 최대주주 또는 2대주주가 득세한 소액주주연대에 손을 내미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다올투자증권 최대주주 이병철 회장 측과 경영권 분쟁 중인 2대주주 김기수씨가 주주행동주의 플랫폼 ‘비사이드코리아’에서 전자위임을 촉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다 보니 재계에선 법제상 비호 아래 놓인 소액주주들이 기업의 체질 개선보다 시세 차익만을 노리기 위한 이슈몰이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소액주주 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 소액주주 운동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이슈몰이에 성공하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 연대 일부가 이탈해 차익 실현을 이루는 경우가 이전부터 빈번했다. 상법 개정의 소액주주 권리 보호라는 취지는 좋지만, 이것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일부 소액주주들의 꼼수로 전락하면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하는 결과가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주된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