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관계’ 강조한 한일중, 정상회의 기반으로 관계 개선·경제 협력 물꼬 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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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간 협의체 재개 나선 韓中, 한일 간 협력체계 강화에도 '물꼬'
북핵 등 민감한 문제는 '뒤로', 3국 간 긴장관계 여전한 영향인 듯
대화 재개했단 점에 의의 커, 한중 투자협력위 재개 등 가시적 성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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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만찬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회담을 갖고 한중관계 경색으로 주춤했던 분야별 협력 채널 복원에 나섰다. 이후 한일중 정상회의에서도 3국 간 화합을 모색하며 협력체계를 강화해 나가자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한일중 정상회의가 4년 5개월 만에 개최된 것인 만큼 3국 사이 긴장관계가 여전해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진 못했지만, 이번을 기회로 서로 간 대화를 재개했다는 점에선 의의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기시다-리창 “3국 협력 강화해야”

26일 윤 대통령은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처음 방문한 리 총리와 65분 동안 만나 그동안 공전해 온 경제·외교안보·사회문화와 관련해 정부 간 협의체를 재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측은 이번 회담을 통해 미·중 전략경쟁과 한반도 정세 불안 속에서도 ‘구동존이(求同存異 : 다름을 인정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의 정신으로 협력관계를 강화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소원한 관계가 지속되는 게 한중 양국에 이익이 없다는 점에 공감한 결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담 모두발언에서 “지난 30여 년간 한중 양국이 여러 난관을 함께 극복하며 서로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해 왔듯 오늘날의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도 양국 간 협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에 리 총리는 “중·한 양국 수교 30여 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양국 관계는 신속한 발전을 이룩했다”면서 “이 모든 소중한 경험을 우리는 함께 소중하게 여기고 또 오래도록 견지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한국 측과 함께 노력해 서로에 믿음직한 좋은 이웃이 되고, 또 서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서도 협력체계 강화 및 화합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3국 협력을 통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앞으로 3국 협력의 주역이 될 미래세대가 마음을 열고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우리는 지역과 국제사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형태로 3국 협력을 확대해 국제사회를 분단과 대립이 아닌 협조로 이끌기 위해 서로의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며 인적 교류, 지속가능한 사회, 아세안과의 협력에 관해 강조하고자 한다고 밝혔고, 리 총리 역시 “위기 대응을 통해 이뤄진 협력의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고 재차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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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현안은 비껴갔지만, ‘대화 재개’ 유의미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크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제8차 회의 이후 4년 5개월 만에 개최된 3국 정상회의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들도 한일중 정상회의를 앞두고 “관계 개선의 좋은 시그널”이라는 평가를 앞다퉈 내놨다. 일각에선 미중갈등 악화 및 세계질서의 급변 속에서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가 ‘한미일 vs 북중러’의 대립 구도 완화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다만 외신에선 “한일중 3국 회담에서 특정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함께 덧붙는 모양새다. 애초 △북핵 문제 △중국의 대만 자치권 주장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민감한 주제가 공식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한일중 3국 간 긴장관계가 여전한 탓이 크다. 예컨대 중국은 북한을 은밀히 지원하면서 한미일 3자 안보동맹 강화에 적대적 태도를 유지해 왔고, 일본은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및 중국과 꾸준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양일간 정상회의만으로 한일중 모두 타협하기 어려운 안보 문제에 구체적 합의를 내기는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의 성과는 서로 간 대화를 재개하고 협력체계 강화를 언급하면서 경제와 인적 교류 등에서 교집합을 만들겠단 의지를 내보였단 점으로 압축된다. 이와 관련해 AP 통신은 “3국 회담에 중대 발표는 없었으나 최고위급 3자 회담을 재개하는 것만으로도 아시아의 이웃 세 나라가 관계 개선에 의욕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좋은 시그널”이라고 짚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이번 정상회의는 세 나라가 3국 협력 체제를 완전히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분기점”이라며 “3국 국민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중 FTA 2단계 협상 재개 등 가시적 성과 有

물론 일부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재개다. 양국은 내달 초 FTA 수석대표회의를 열어 한중 FTA 후속 협상의 동력을 다시 살려 나가겠단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한중 양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상품 교역 분야의 시장 개방을 넘어서 앞으로는 서비스와 문화, 관광, 법률 분야에 이르기까지 교류와 개방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FTA를 위해선 아직 적잖은 절차가 남아 있겠으나, 8년간 지지부진했던 논의를 재개하고자 의지를 다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는 평가다.

한중 양측이 2011년 이후 중단된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를 13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번 회담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투자협력위원회는 한국 측 산업통상자원부와 중국 상무부 장관이 주도하고 양국의 투자 관련 정부 부처와 단체, 업계 대표가 위원으로 참석해 투자 촉진 방안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또 한중은 올해 하반기 ‘한중 공급망 협력·조정 협의체’를 열고 양국 간 ‘공급망 핫라인’을 수시 가동하기로 합의하기도 했으며, ‘한중 수출통제 대화체’를 출범해 원자재와 핵심 광물의 수급 등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를 위한 협력체계도 논의했다. 요소수 사태와 같은 중국발 자원 부족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외교관계를 통해 마련하겠단 취지다.

일본과는 여행 비자 자율화를 넘어선 ‘여권 자율화’ 논의가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본격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앞서 윤덕민 주일대사는 지난달 26일 외교부 출입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돌아가는 협력관계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당시 거론된 방안 중 하나가 양 국민의 출입국 절차 간소화였다. 여권 자율화가 실제 이뤄지면 이는 유럽연합(EU)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각국은 해당 조약 아래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해 출입국 시 별도의 여권 검사 없이 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