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전략 앞세워 질주하는 프랑스, 독일도 가뿐히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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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속속 터 잡는 글로벌 기업들, 프랑스 '화색'
적절한 친기업 전략으로 투자 유치 급증
'과거의 영광' 잃은 독일, 프랑스에 자리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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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가 아마존, 화이자,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높은 시장 이해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친기업 전략’을 구사, 가파른 시장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프랑스가 기존 ‘친기업 강대국’이었던 독일을 추월하며 유럽연합(EU) 내 투자 경쟁 판도를 뒤집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프랑스의 ‘연이은’ 투자 유치

12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실은 “미국 아마존이 프랑스에 12억 유로(약 1조8,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며 “3,000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은 물류 강화와 함께 클라우드 부문인 AWS(아마존웹서비스)의 인공지능(AI) 관련 컴퓨팅 용량 증설 등에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금융사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 이후 런던을 떠났던 은행과 헤지펀드들이 파리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미국의 은행 모건스탠리는 2025년까지 파리 주재 전체 직원 수를 500명으로 늘리기로 했고, 추가로 100명의 직원을 더 고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외로도 미국 대형 제약사 화이자는 프랑스 내 연구개발 시설 구축에 5억 유로(약 7,4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며,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덩케르크 공장에 약 3억6,500만 유로(약 5,4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제조업 기업인 독일 항공 기업 릴리움은 프랑스 내 신규 공장에 4억 유로를 투자, 최대 85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고, 스위스의 니켈 제련기업 KL1도 3억 유로를 투자한다.

이번 발표는 범정부 차원의 연례 투자 유치 행사인 ‘프랑스를 선택하세요(Choose France)’를 앞두고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파리를 유럽 최고의 비즈니스 거점으로 만들고자 취임 이듬해인 2018년부터 해당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130억 유로(약 19조2,000억원)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으며, 올해 투자 규모는 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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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이해도가 투자 유치 이끌어

이 같은 프랑스의 ‘친기업 전략’이 성공한 비결로는 정부의 높은 시장 이해도가 꼽힌다. 독일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스벤 얀센은 “마크롱 대통령이 혁신과 창업을 촉진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시장 경제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국가 정책을 활용하는 방식이 독일보다 프랑스가 더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마크롱 정부는 투자자 출신의 롤랑 레스퀴르 산업부 장관 등 기업·산업 경험이 많은 관료들을 곳곳에 배치하며 기업의 ‘필요’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집중해왔다.

높은 시장 이해도는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졌다. 컨설팅 업체 EY(언스트앤영)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는 2022까지 4년 연속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외국인 직접 투자 프로젝트를 유치했다. 2022년 프랑스가 유치한 외국인 직접 투자 프로젝트는 1,259건으로 전년 대비 3%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2, 3위를 차지한 영국과 독일의 투자 유치 건수는 각각 -6%, -1%씩 줄었다.

독일 정부의 ‘횡보’

프랑스가 글로벌 기업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시장을 질주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유럽의 대표적인 경제 대국이자 친기업 국가로 꼽히던 독일이 프랑스에 ‘친기업 선두 주자’ 자리를 내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프랑스 정부가 5년 이상 친기업 정책에 힘을 실으며 성장을 지속하는 동안 독일은 사실상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독일 정부가 ‘길을 잃었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기업·산업 이해도가 낮은 정치인들이 기업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하면서 독일 경제 전반이 얼어붙었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독일 정부 내 기업 경험이 있는 인재는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이해도가 높은 인물로 거론되는 이는 사실상 골드만삭스 출신의 외르크 쿠키스 총리실 경제 담당 사무차관뿐이다.

고질적인 관료주의도 독일의 투자 유치 및 경제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독일 엔지니어링협회와 중소기업연구소가 함께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 중소기업은 행정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연 매출의 3.2%(2022년 기준)를 지출하고 있다. 독일 특유의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산업계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최고지도자의 권력이 비교적 약한 연방정부 체제 역시 독일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친기업 정책이 동력을 잃자 경제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는 2020년(-3.8%) 역성장 이후 2021년(3.2%)과 2022년(1.8%) 반등에 성공했지만, 2023년 재차 0.3% 역성장했다. 지난해 독일의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2.0% 후퇴했다. 제조업 생산이 0.4% 위축됐고, 수출도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독일 경제의 엔진이 식고 있다”는 비관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